김화연
봄이 온다고 해서
창문을 활짝 열고 얼굴을 내밀었는데
딸인 듯한 여자가
엄마인 듯한 여자에게
패딩 잠바 앞섶을 여며주면서 화를 낸다.
말도 없이 나오면 어쩌냐고,
얼마나 찾았는지 아냐고,
딸인 듯한 여자는 엄마인 듯한 여자에게 들었던
오래전 말들을 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가문비나무 아래 흑곰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시기를 알려 주는 식물들처럼
저 돌려주고 돌려받는 사이에
몸에 번지는 부탁과 걱정의 말들
뺨을 닮은 딸인 듯한 여자가 잡는 두 손
엄마는 어디쯤에서 서성거리고 있을까
애칭을 부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아무리 빙빙 돌아도 과거만 있는 집을 찾고 있는 걸까
낯익은 것들은 다 낯설어지고
멀어지거나 멀어지다 겨우 만난 곳이
아득한 옛날이라는 것을 알까
앞서던 기억으로 뒤따르고
뒤따르던 기억으로 또 앞서가는
번갈아 깃드는 시간이
겨우 기억의 이쪽인지 저쪽인지 또 헷갈리는 것이다
각자 주고받는 호칭도 오래되면
슬쩍, 그 처지를 바꾸는 일이 종종 있다
마침 한 짐 꽃송이들을 허무는
벚꽃나무 아래가 피안인 듯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