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름보따리

by 김화연

김화연



햇살 따뜻해지면

집안의 그늘진 것들이 집밖으로 나온다.

하반신에 아랫목 든

혼자 살고 있는 여자

자식들 모두 집나간 집에는

주변마다 푸른 넝쿨들 가득하다 ,

지긋한 여름을 떠나려는 푸른 보따리들

얽히고설킨 매듭 야무지다

해마다 여름은 저 혼자

푸른 보따리 싸매고 다시 풀곤 했다.

말뚝 같은 씨앗 떨어지면

오도 가도 못하고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던 들판

저 푸른 보따리 풀어보면

옛날 옛적으로 시작되는 환한 미소와

쓰지 않아도 배부른 손때 묻은 동전들과

여문 씨앗에 내렸던 지긋한 장마

회색 그늘 빛이 있는 축축한 식구들의

머물다간 옷들이 뛰어가거나 걸어 나갔다

이제 그 속은 텅 비어 있다

문틈으로 들어 온 햇살 만지작거리는 여자

계절에 묻어 온 저녁바람으로

벽지에 국화 몇 송이 피워놓으며

다시 싸맬까, 따라 갈까

그늘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번갈아 깃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