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연
한 사람의 생사 앞에 서서
핏줄로 서명할 때
안절부절못하는 이름
초조하게 기다리기만 하는 이름
위독의 길목을 지키고 서 있는 이름이 된다
무채색의 이름 위에
내 이름을 겹쳐 쓰는 그런 일
느닷없이 쾌청한 어느 날을 뒤지면
다급한 이름으로 발견되기도 하고
때론 누워있는 이름을
끙, 일으키는
힘센 이름이 되기도 한다
나무는 그늘로 저의 이름을 쓴다
낙하하는 이파리들의 병명을
저의 이름으로 받는다
보호자라는 시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시끄러운 창문을 닫아주고
이불을 다독여주고
시간에 맞춰 약을 먹이는 일
그때 내 이름은 두 사람 몫으로
두껍고 무거운 호명이 된다
한사람이 누워있을 때
서 있는 사람이 된다
한 사람이 사경을 헤맬 때
초조하게 서성이는 사람이 된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지원선정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