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연
누군가 버린 휴지 뭉치를 보면
뒤끝들이란 다 구겨져 있다
닦고 훔쳐내는 것들은
평평한 것들에서 구겨지는 일의
마지막 행위이다
햇볕들이 평평하게 말리는
이불이며 소금이 아니더라도
구겨지지 않는 물도
사람의 몸속을 돌고 나면
한 줌 구겨진 뒤끝이 된다
벗어놓은 옷가지들, 막 잠이 빠져나간
이불들, 얼굴을 닦은 수건들까지
구겨지지 않은 것들이 없다
내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가 독보적으로
구겨진 게 많다
구겨진 생각을 입 밖으로 쏟아내면
입안은 개운하다
그건 또 구겨진 것들을 걷어내려는
사람의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구겨진 것들
속에서 겨우 빠져나오며 살고 있지만
내 얼굴이며 피부는 여전히 구겨지고 있다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