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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by 김화연


김화연


두근두근 내 봄에

첫 제비꽃이 피었다

양지에 핀 제비꽃들은

내 옷장을 지키던 문지기 같다

꽃핀 자리는

꺾을 수도 열수도 없는

아득한 옷장이다

단벌로 보라의 계절을 보냈다

햇살과 어둠을 섞은 보라는 하얀 얼굴에

잘 어울렸고

보라와 함께

걷는 발길은

내 청춘의 보폭이었고

화관을 쓰고 걷던 출가의 길이었다.

지금도

보라색 옷을 입으면

두근두근 거리는 단추들

먼발치까지 다다르는

보라의 보폭들

보라가 늙으면

거뭇한 얼굴이 된다.

옷장에 걸린 옷들은 레이스가 늙어갔다

멍든 자국처럼 천천히 봄이 풀리고

꽃 진 자리

꺾을 수도 열수도 없는

아득한 옷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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