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연
만약이라는 말은
또 다른 지구
주머니에 넣기도 편하고
어느 곳에서나 먹을 수 있는 상비약 같은
만약이라는 말
자꾸 만지작거리면 영영 사라지기도 한다.
수만 개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기도 하고
검은 운석이 되어 떨어지기도 한다.
만약이라는 말 속에서는
집이 스스로 움직이고
꽃밭이 살아서 뒤란과 마당 끝을 옮겨 다닌다
움직임이 부산한 만약이라는 말
그 한마디에는 온통 변수들이 가득하다
그 만약을 누구나 갖고 산다.
돌파구처럼 막다른 골목처럼
한 숨 끝에 곁들이는 그 만약이라는 말
이웃사촌인 듯 살뜰하다가도
꼬리 자르고 떠나는 도마뱀 같은 말
만지면 집게발을 떼어버리고 떠나는 꽃게 같은 말
빈부의 격차도 없고 성차별도 없는
과거와 미래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두 글자
만약이라는 말 한마디로 늦은 밤까지 뒤척인다.
너무 멀리까지 가도 괜찮은
돌아오지 않으면 더 좋은 만약이라는 말
이 나무 저 나무 날아다니며
만약을 전하기 바쁜 새들과
뒤꼍 설익은 바람사이로 창문이 달리는 밤
머릿속에는 하루 동안 썼던
만약이라는 말이
우수수 머리맡에 떨어진다.
나는 베개를 만약이라는 말밑에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