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는 낙원이 있기를

어떤 날의 일기

별 것도 없는 나의 자격지심이 반짝이던 날들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멀리 도망쳐 온 한 번도 살아보지 않던 나라에서의 조그마한 평온은 쉽게 쌓았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고, 나도 내가 잘못 해오지 않은 걸 알지만 부서지는 것도, 내가 탓할 곳도 결국 나였다. 반짝이던 하늘이 빛을 잃은 기분이다.

내가 어떤 최선을 더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떻게 더 노력했어야 이 자격지심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갑자기 일어난 100:0 교통사고처럼 억울하다. 이게 나의 최선이었다. 이보다 더는 '나'는 할 수 없다. 거기에서 오는 그 절망. 나에게 가장 중요한 '내'가 가진 나의 한계. 잘하고 싶지 않았으면 더 쉬웠을 오늘. 거기에서 오는 절망과 우울과 그 모든 것. 그 모든 곳에서 도망쳐 온 여기에서, 아니 여기까지 그 우울과 자격지심은 나를 쫓아왔다. 인생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쉽기를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다. 쏟아부은 마음과 노력을 돌려받고 싶다.

도망친 여기가 나의 낙원이기를. 그저 폭풍우 불던 하루고, 내일은 무지개가 뜨기를. 그럴 수 있는 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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