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
내 인생 최초의 시련은 중학교 1학년 때 찾아왔다.
우리 부모님은 이른바 ‘해방둥이 세대‘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명문 사립대를 졸업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오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무모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어머니와 함께 외조부 댁에 머물며 동생들과도 떨어진 채 새로운 학교에 다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전교에서 유일한 사복차림
설상가상으로, 전학을 갈 계획이었기에 학교 교복을 구입할 수도 없는 애매한 처지였다. 당시 전두환 정부의 ‘교복 자율화 조치’로 1년 뒤에는 사복 착용이 허용될 예정이었지만, 중 1이 된 우리 학년은 여전히 교복을 입어야 했다.
학교 측에서는 내 사정을 고려해 교복을 면제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전교에서 유일하게 교복을 입지 않은 학생이 되었다. 처음 한 달 정도는 “곧 전학 갈 학생”이라는 이유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달, 세 달이 지나자 아이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게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육성회비조차 제때 낼 수 없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당시에는 회비를 미납한 학생들의 이름을 칠판에 크게 적어두고, 담임 선생님이 공개적으로 추궁하는 관행이 있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사장님의 귀한 큰딸’로 온갖 애정을 받으며 살았던 나는, 하루아침에 ’불쌍한 소공녀‘가 되었다.
영어 교과서를 통째로 외운 이유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버티는 동안, 나를 지탱해 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나는 결심했다.
“교복을 안 입어서 눈에 띄는 게 아니라, 특출한 무언가로
돋보이자!”
운이 좋게도, 나는 이미 영어 시간의 스타였다.
영어 선생님조차 “혹시 외국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니?”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요즘은 영어 조기 교육이 흔하지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중1 때 알파벳부터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1981년 EBS 영어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어머니와 함께 매일 영어를 공부해 왔다. 필기체까지 완벽하게 쓰시던 어머니 덕분에, 나는 이미 또래보다 몇 년 앞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세웠다.
“영어만큼은 누구도 못 따라올 정도로 잘하자.”
나는 영어 교과서를 한 권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중학교 3년 동안 사용한 세 권의 영어 교과서를 전부 암기했고, 수없이 반복한 오디오 덕분에 발음까지 원어민 수준으로 다듬어졌다. 이 습관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고, 덕분에 나는 어떤 내용이든 빠르게 암기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결국, 나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나만의 성을 쌓고,
내 안에서 스스로 강해지는 법을 배웠다.
결핍을 통해 얻게 된 ‘위대한 유산’
이렇게 돌아보면, 내가 어린 시절 겪은 결핍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유산이 아니었나 싶다.
만약 내가 부족함 없이 자랐다면, 아이언맨 급 멘털을 갖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십 년 뒤 내전이 일어난 오지에서 유일한 여자 유학생으로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마치는데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
부모님의 실패로 나는 어린 나이에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도 나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자신감과 도전 정신을 배우게 되었다.
이제 결핍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갈무리하겠다. 하지만 나를 고통에서 탈출시킨 두 번째 비밀 병기는 아직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2탄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