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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

야구장에서 배운 인생 수업

by 김지향

캐나다와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이 있다.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스포츠를 시킨다는 것.

스포츠는 단순한 체력 단련을 넘어서, 미국 대학 입시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NCAA(미국 대학 체육 협회)는

우수한 운동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며, 스포츠 팀 출신들은 강력한 동문 네트워크를 형성해 졸업 후에도 다양한

기회를 얻는다. 또한, 운동을 통해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는 경험을 하며 도전 정신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게 되므로, 사회생활과 직업적 성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여건이 허락하는 한, 부모들은 축구, 농구, 야구, 미식축구, 수영 등 다양한 스포츠를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야구를 시키는 ‘베이스볼 맘’이다.

그리고 지난 6년 동안 고등학교 야구팀과 팀 커뮤니티에서 겪은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야구는 가족이 만든다:’ 부스터 클럽‘과 부모들의 열정

야구팀을 운영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모든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부모들이 역할을 나누어 운영하는

’부스터 클럽’이 필수적이다. 시즌 중에는 일주일에 두 세

차례 회의가 열리며 경기 중 매점에서 핫도그와 햄버거를

직접 구워 판매하는 담당, 입장권 판매 및 경기장 운영 담당, 미디어 박스에서 실시간 경기 중계 및 음악 담당, ‘어머니의 날‘, ‘아버지의 날‘, ‘아동 초청 행사‘ 등 지역 사회 이벤트 기획 등의 다양한 업무를 부모들이 맡는다.

그리고 가장 큰 행사 중 하나가 바로 ’팀 디너(team dinner)’다. Varsity(고등학교 대표팀)로 선발된 25명의 선수들을

매주 각 가정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며 그들이 팀워크를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이벤트는 선수들의 라커룸을 꾸미는 행사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선물 보따리를 준비해, 학교 대표 선수로 뽑힌 것을 축하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행사에서 경기를 뛰지 않는 선수들의 부모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응원하는 문화

야구팀에는 25명의 선수 중 실제 경기에 나서는 주전 선수는 15명뿐이다. 나머지 10명은 대부분 경기를 뛰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소외되지 않는다. 부모들은 팀의 일원으로서 모든 선수가 함께하는 과정 자체를 소중하게 여긴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팀 행사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단순하다. 경기 출전 여부를 떠나, 여기까지 오는 여정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6-7살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십 년 정도 훈련과 경기를 거쳐 이 자리에 섰다. 그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도, 부모들은 아이들이 팀의 일원으로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길 원한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날. 졸업을 바로 앞둔 5월 초순 무렵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운다. 매년 보지만 감동적이고 찡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승자만이 주목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대한민국도 이제 단연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미국에 살면서도 ‘이 나라가 정말 최고 선진국 맞나?’ 싶을 때가 많다. 그런데 이런 순간들을 볼 때, 나는 깨닫는다.

진정한 선진국이란, 단순히 경제력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존중하는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언젠가 박완서 선생의 수필 <꼴찌에게 박수를>을 읽으며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마라톤 꼴찌 주자를 끝까지 기다려 힘껏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 떠오른다.

결과보다 과정이 가치 있는 것임을 아는 사람들.

야구장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한 스포츠 정신이 아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승자만이 아닌 모든 도전자를 응원하는 마음.

나는 오늘도 그 가치를 배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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