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뜻밖의 연결로 빛난다
고등학교 시절, 특히 이과로 진학한 후에는 수학 II, 물리, 화학, 생물을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문과 쪽에 더 적성이 맞았기에, 뛰어난 성적을 내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과목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ENGLISH.
그때 나는 영어 단어를 지나치게 많이 섞어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영어 단어를 많이 안다고 자랑하고 싶기도 했고 또, 실제로 써먹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앙드레 김’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당시는 한국이 산업화 시대를 향해 나가던 시기였고, 패션은 아직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앙드레 김 선생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를 넘어 하나의 ‘국가 브랜드’가 된 분이다. 특히 유난히 영어를 섞어 쓰는 화법으로 유명했고, 덕분에 희극인들 사이에서 자주 희화화되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그 앙드레 김선생님을 실제로 만나게 될 줄이야!
세르비아 대사관에서 만난 ‘또 다른 나’
앙드레 김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세르비아 대사관에서 열린 사교 파티 행사에서였다. 이 파티는 각국의 대사,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한국과 세르비아의 문화 행사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나는 그곳에서 국내 유일한 세르비아 문학 전공자라는 이유로 초대받아 행사 진행을 돕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그날의 관심은 내게 집중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작은 나라 세르비아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셨고,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셨다. 덕분에 우리는 긴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내 부모님보다도 연배가 높으신 선생님을 대하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내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요? 국내 유일한 전문가를 만나게 되어 제가 더 행운입니다.”
나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진정으로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은 겸손함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문득 용기가 생겼다.
어쩌면 ‘훈수 기질‘이 발동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선생님께 내 별명이 ‘앙드레 김’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 이유까지 설명해 드렸다.
그때 선생님께서 순간 정색하시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내가 쌍둥이였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는데, 결국 이렇게 가족을 만나게 되었군요!”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함께 크게 웃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 후로도 나는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었다.
2년 뒤,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리셉션.
그때도 선생님께서는 트레이드마크인 하얀색 의상을 입고, 커다란 백장미 다발을 들고 계셨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다시금 느꼈다. 자신만의 색깔을 끝까지 지키는 것, 그것이 진짜 ‘브랜드‘라는 것.
앙드레 김 선생님은 패션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의 ’ 작품‘처럼 가꾸신 분이다.
그리고 나는 그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를 배웠다.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의 길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
그날의 대화는 내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과 함께.
“패션이란,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디자인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