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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인문학자의 비애와 자존심

by 김지향

인문학의 위기설은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온

이야기이다. 경제적 실용주의와 취업 중심의 교육 환경

속에서, 인문학 분야는 점차 학과 축소와 통폐합의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현상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여전히 인문학 전공자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문학적 사고력이 디자인, 콘텐츠 개발, 윤리적 AI 연구 등에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구글의 초기 화면 디자인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인문학도들의 감성과 철학으로 탄생한 디자인임을 확신하며 은근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래, 이게 인문학의 힘이지!


모교에서 재직하던 시절, 나는 다양한 문학 전공 교수들과

자주 어울렸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터키, 독일, 그리고 세르비아 전공자인 나. 우리는 각기 다른 언어로 문학을

공부했지만, 모두 해당 국가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5-10년의 세월을 바친 공통점이 있었다. 그 덕분일까?

우리는 종종 “인문학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공계나 예술대 교수들에 비해 인문학

연구자들은 연구비 지원이 적고, 산업과의 연계도

미미하다 보니 학제 간 융합 연구로 산업 분야 교수들과

회식을 할 때면 회식 장소의 ‘급‘부터 차이가 난다.

이럴 때면 우리는 취업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제자들을

떠올리며 씁쓸한 감정을 나누곤 했다.

한 번은, 학회 후에 인사동에서 한잔 걸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마르케스, 라깡, 러셀, 이보 안드리치, 마술적 리얼리즘 …

우리는 술기운에 문학의 위대함을 열변하며 걷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맞다.

우리는 돈은 없지만, 자존심과 철학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비록 경제적 가치는 낮아 보일지 몰라도, 인문학은 사회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AI 가 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결국,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인문학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가며 우리 삶과 함께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외쳐본다.

“청년들이여,

인간이 그려낸 무늬를 담은 인문학을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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