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가 나를 바꿨다.
대학 합격 통보를 받고 우리 부모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입학식도 하기 전에 외대 학생회관으로 나를 데려가신 거였다. 학교 로고가 새겨진 배지를 사주기 위해서.
배지를 몇 개 사시더니, 부모님은 당부하셨다.
“학교 갈 때마다 옷에 꼭 달고 다녀라.”
한국 전쟁이 끝난 1960년대 대학을 다니셨던 부모님 세대에게는 아마도 대학 배지가 훈장 같은 것일 수도 있었으리라. 실제로 어머니의 대학 시절 사진을 보면, 단정한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어깨엔 가죽 핸드백을 걸치고 한 손에 표지가 보이게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생이 된 시절은 어떤가.
청바지에 운동화, 거리에서 투쟁을 외치는 격변의 시대.
그런 때에 눈에도 안 띄는 대학 배지를 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솔직히 약간 짜증이 났지만, 난 4년 동안 하루도 배지를 안 단 적이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이 작은 배지가 ‘나만의 훈장’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내가 대학생이되었구나. 전공 공부 제대로 한번 해봐야겠네.’ 게다가 나는 1기 졸업생이 될 터였다.
‘잘하면 이 분야 대한민국 1 등이 될 수도 있겠는걸?’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자긍심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긍심은 < 나만의 위엄> 이 되었다.
내가 ‘여자 ROTC’가 된 이유
2010년부터 여학생들도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지원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은 많은 여성 학도지원군을 캠퍼스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때 캠퍼스에서 학교 배지를 착용하는 사람들은 ROTC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배지를 달고 다니는 나를 보고 동기들과 선배들은 나를 ‘여자 ROTC’라고 놀렸다. 처음에는 우스갯소리였지만, 배지를 달고 다니면서 깨달았다.
나는 대학생으로서의 자긍심과 사명감을 가슴에 품었고,
조기 졸업 요건을 갖출 정도로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배지는 단순히 액세서리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임과 신념의 상징이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알게 되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누구의 지적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게 된다는 것을.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믿어라, 그러면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다.”
그때의 배지는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배지‘를 달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