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파우스트』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멈추어라, 너 참으로 아름답구나.”
괴테의 『파우스트』 제2부에 나오는 이 유명한 구절은 인간 욕망의 정점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한다.
파우스트는 악마 멤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을 통해 젊음과 지혜, 쾌락과 성공을 얻지만, 그 무엇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러다 마침내 이 문장을 외친다.
모든 것을 가졌을 때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땀 흘리며
세상을 일구었다는 충만함 속에서였다.
인간의 욕망이란 단순히 무언가를 ‘갖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되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이곳에 담겨 있다.
『파우스트』는 인간 욕망의 본질을 통찰한 작품이다.
이 대작은 25세의 괴테가 1부 초고를 완성한 1774년에
시작되어, 무려 57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1831년, 괴테가
82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2부가 마무리되었다.
당대를 풍미하던 천재 작가 괴테는 삶을 통해 최고의 석학이 되었다. 이런 그의 지성은 철학과 예술, 정치와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파우스트에서 유감없이 발현되었다.
1부가 그레트헨과의 연애담이라면 2부의 스케일은 이야기 위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판타지다. 3000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에 신화와 역사 속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가 지하세계와 지상, 천상 세계를 넘나들며 상상의 최고조를 보여준다.
파우스트는 단지 한 인물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괴테 자신의 삶과 정신이 농축된 거대한 ‘욕망의 연대기’라 할 수 있다.
1부의 파우스트는 지식의 한계를 자각하며 절망한다.
그는 평생을 학문에 바쳤지만, 삶의 깊이에 닿지 못한
허망함 속에서 멤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담보로 건다.
젊음을 되찾은 그는 곧 그레트헨이라는 순수한 여인과의
사랑에 빠지며, 도덕보다 욕망을 좇는 ‘질풍과 노도(Storm
und Drang)’의 삶에 돌입한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욕망은 순수한 사랑을 파괴하고,
그레트헨은 가족과 신앙, 정신까지 잃는다.
쾌락은 달콤했지만 책임은 혹독했다.
무책임한 욕망은 결국 누군가의 삶을 붕괴시키고 만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2부에서 파우스트는 전혀 다른 층위의 욕망을 좇는다.
이제 그는 개인적 쾌락이 아니라 사회적 과업에 몰두한다.
황제의 궁정에서 전쟁에 개입하고, 간척 사업을 통해 바다를 막아 사람들을 위한 터전을 만들고자 한다.
그에게 욕망은 이제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도전이
된다.
그 과정도 멤피스토펠레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이때부터 파우스트는 점차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욕망이 깊어질수록 그는 오히려 겸허해지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더 나은 세계‘를 꿈꾼다.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욕망을 품고 살아간다.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
때론 그것이 누군가의 기대를 짓누르기도 하고,
내 안의 도덕과 타협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욕망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욕망은 삶의 추진력이자 인간성의 본질에 가깝다.
단지, 그것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다른 결로 나아갈 뿐이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말한다.
끊임없이 욕망하고, 실수하고,
또 도전하는 인간의 삶 자체가 아름답다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욕망하고 있을까?
그 욕망은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을까?
괴테의 말처럼,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욕망 앞에서 정직한 자야말로 진짜 인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