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받지 않을 권리, 계속 나아갈 용기

스피노자에게 배운 해방의 기술

by 김지향

살다 보면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삶을 흐트러뜨리는 이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선의를 가장한 간섭으로,

또 어떤 이는 무심한 무관심으로 우리를 흔든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그런 시선이나 말 한마디에

우리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이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건가?”

“이 길이 이상한가?”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고 고집스러운 건가?”


그러나 고독이 무기였던 한 철학자를 떠올리면,

다시 마음이 단단해진다.

타인의 기대나 관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지켜낸 자.

그 이름 스피노자.


1632년 11월 2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스피노자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자랐고, 유대교 율법을 공부하며 전형적인 종교인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철학을 접한 순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진리에 목마른 그는 전통적 유대 신앙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20대 중반에 유대교 공동체로부터

파문당하게 되는 시련을 촉발한다.

당시 ‘파문’은 단순한 단절이 아닌 사회적 죽음을 의미했다.

모든 인간관계가 끊기고, 가족조차 그를 외면했다.

고립.

무관심.

방해.

침묵.


그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철저한 타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스피노자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광학 렌즈를 깎으며 생계를 유지했고,

그 렌즈보다 더 투명한 사유를 만들어냈다.


‘신은 곧 자연이다’라는 그의 명제는,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기성 종교가 신을 절대적 초월자로 상정할 때,

스피노자는 신을 우리 삶의 이치와 질서 안에서 찾았다.

신은 어디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자체이며, 우리의 삶, 감정, 관계, 사유 안에 내재한

이성이라는 것이다.


이 철학은 오늘날에도 강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이 만든 진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남이 정해놓은 기준, 나에게 씌워지는 틀, 타인의 시선.

나의 이성으로 세상을 보는 순간

우리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해방은 외로움 속에서 피어난다.

스피노자는 단 한 번도 스승을 두지 않았고,

단 한 번도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진리와 자유 외에는 어떤 호의도 거절했다.

그를 지지하던 몇몇 사람들조차도,

그의 급진적인 사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의 저서 『신학정치론』은 금서로 지정됐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죽은 뒤에야, 스피노자의 사유는 유럽 전체를 흔들었다.

비로소 그의 이름은 지폐에, 대학 강의실에, 사상의 계보

안에 새겨졌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진정한 자유란 외부로부터가 아닌,

내 마음 안에서 비롯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무심한 말이 나를 상하게 해도

일부러 나를 비껴가고, 뒤에서 평하는 사람이 있어도

우리의 걸음을 멈추지 말자

그 누구도 우리의 울타리를 침범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자.


그는 혼자였지만 자유로웠다.

그는 거절당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도 그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멈추지 않길 정말 잘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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