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처럼 ‘나‘를 기록하다
“나는 나 자신을 소재로 삼는다.” — 몽테뉴
왠지 스스로에게 낯설 때가 있다.
무엇이 기쁜지, 무엇이 불편한지도 흐릿한 순간.
어떤 날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또 어떤 날은 놀랄 만큼 무감하다.
‘기록이라도 해보자’며 다이어리를 펼쳐보지만
세 줄을 미처 채우기도 전에
덮어버리기 일쑤다.
“왜 이럴까? 뭐지?”
답이 없는 질문만 되풀이될 뿐이다.
그럴 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의심하고, 털어놓았던 사람.
스스로를 세심하고 집요하게 관찰했던 철학자.
그의 이름,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그는 16세기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법관으로 안정된 삶을 살다가
인생의 중턱에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고향 성에 틀어박힌다.
그리고 시작한 일—
자기 자신을 글로 써 내려가는 일이었다.
그가 쓴 책이 바로 『수상록(Les Essais)』 이다.
‘에세이(essay)’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유래된다.
불어로 essai는 ‘시도’, ‘실험’이라는 뜻이다.
결국 에세이란, 완성된 생각을 단정 짓는 글이 아니라
생각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다.
몽테뉴는 말한다.
“나는 내가 아는 것만을 말하고,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의 글에는 정답도, 명령도 없다.
그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때로는 솔직하게, 때로는 우회적으로
그러나 늘 자기를 향한 정직함으로 풀어낸다.
우리는 요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나’로 살아간다.
SNS에서는 좋아요를 받을 버전의 ‘나’를 내보이고,
회사에서는 일 잘하는 직원으로,
가정에서는 괜찮은 부모로 살아가야 한다는
‘정체성의 다중 역’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나는 지금 어떤 기분인지’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지’조차
느끼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간다.
그럴 때 몽테뉴는 우리에게 제안한다.
그냥 나 자신이면 된다고.
그걸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의 『수상록』은 그래서
철학이면서도 문학이고,
고백이면서도 인류학이다.
혼란스러운 듯 보이지만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역시 『수상록』을 탐독했으며 그래서
『햄릿』과 『리어 왕』에는
몽테뉴의 문장과 사유가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그는,
인간을 인간답게 이해하고 싶었던 셰익스피어에게
가장 그럴듯한 모델이 아니었을까.
요즘 들어 이유 없이 가라앉고,
사람들의 말에 쉽게 상처받고,
무언가에 휘청였다면—
그 이유를 적어보자.
꼭 글로 쓰지 않아도 상관없다.
오늘 어떤 감정이 나를 흔들었는지,
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자기 자신을 ‘엣세(essai)’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세상이 덜 두렵고,
타인의 마음이 더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몽테뉴처럼,
오늘 나를 시도하며 살아보자.
그 시도가 쌓이면, 언젠가는
그 자체로 한 권의 ‘나’가 되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