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라깡과 현대인의 정체성
C양의 첫 출근 날.
대학을 졸업하고, 한 회사에서 인턴을 거쳐 정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운이 좋게도 서울 본사 근무.
인생의 항해에서 순항을 알리듯 설레는 아침이었다.
‘뭘 입지? 아무래도 정장을 입어야겠지?
아니야, 너무 갖춰 입으면 오히려 촌스럽게 보일 거야.
그렇다고 블라우스 차림은… 음, 재킷은 걸쳐야겠지?’
고민 끝에 L사 로고가 살짝 보이는 그레이 바지 정장을
입었다. 가격은 월급의 절반에 육박했지만, 정직원이 된
기념이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엘리베이터 앞.
이미 몇몇 직원들이 모여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머, 에코백 정말 근사해요.
요즘은 환경 생각하는 패브릭이 대세던데, 멋져요!”
“그러게요. 지구 온난화니 탄소 발자국이니…
진짜 실천하는 분들이 많아졌죠.”
말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무리를 지어 복도로 사라졌다.
C양은 속으로 생각했다.
‘로고가 너무 아래 있어서 안 보이나…?
그래도 아는 사람은 알던데…‘
그리고 조심스럽게 재킷 자락을 살짝 들어 로고를 드러냈다.
그날 밤, C양은 급히 인터넷을 뒤졌다.
“에코백”, “친환경 브랜드”, “트렌디한 NGO”
다음 날, 그녀는 커다란 문구가 적힌 에코백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지구는 우리 모두의 것. 매일이 지구의 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녀를 힐끗 보고는 이내
자기들끼리 대화를 이어갔다.
“그 배지 저도 있어요. 그런데 모양이 바뀌었네요.
대학 때 봉사활동 갔을 때 저도 늘 달고 다녔죠.
어쩌면 우리 스쳤을지도 모르겠네요.”
“전 지금도 소액 기부하고 있어요. 이번 캠페인에 맞게
새 배지가 나왔다고 얼마 전에 감사 선물로 받았어요.”
그들의 대화에 C양은 움찔했다.
‘아, 나도… 봉사활동…’
학창 시절,
선배의 강요로 마지못해 참가한 농촌 봉사 활동이 떠올랐다.
퇴근 후, 서랍 깊숙이 박아두었던 작은 스카프를 찾아냈다.
“2017 농촌 사랑 나눔 캠프”
다음 날, C양은 그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회사로 향했다.
에코백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
이번엔 직원들 대부분이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와, 오늘 진짜 단합 대회 느낌 나네요.
이러니까 2002 월드컵 생각나!”
“오늘 한국 이기면 내가 커피 쏜다!”
“멋져요~ 최고!”
웃음소리와 함께 복도를 향해 흩어지는 무리 속에서,
C양은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의 스카프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고,
에코백의 문구는 시선을 끌지 못했다.
순간, C양의 머릿속에 잔잔히 울리는 문장이 떠 올랐다.
“우리는 사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 자크 라깡
라깡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본질적으로 타자의 시선,
타자의 욕망을 추구한다.
우리가 무엇을 원한다기보다, ‘타인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나의 욕망이 아닌 다수 사람들의 욕망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답게 살자”는 말이 막연하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타인의 기준’ 위에 올라선 자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C양이 명품 정장을 입은 것도, NGO 가방을 든 것도,
봉사 스카프를 고른 것도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라
믿었지만, 실상은 타자의 인정을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녀의 ‘선택’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었을까? 혹은,
타인의 시선을 끌고 싶은 그녀의 욕망을 드러낸 결과였을까?
라깡은 욕망의 구조를 거울에 비유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나를 인식하고,
타인의 욕망을 통해 나의 욕망을 설정한다.
그러므로 ‘나’라고 믿는 그 무언가는 사실 타자의 틀로
만들어진 거울 속의 자아에 가깝다.
C양은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유리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너무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하나하나
덧입은 ‘누군가’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이 유난히 안쓰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