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 한 번도 ‘나’인 적이 없다

하이데거 철학으로 들여다본 C양의 실종된 자아

by 김지향

“현존재는 항상 이미 자기를 넘어선 존재로서,

그 존재의 방식은 가능성이다.”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C양은 정말 성실해.”

“항상 밝고 에너지가 넘쳐요.”

“다른 팀의 업무까지 살펴주는 배려심까지 있으니까요.”


매일 아침, 회사 내 게시판에는 C양을 칭찬하는 동료들의

메시지가 끊이지 않는다.

회의에서 발표를 끝내고 나면 박수가 따라오고,

부장님은 늘 말한다.

“C 양 같은 인재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하지만 퇴근길, 버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의 머릿속에는 늘 생각이 맴돈다.

“도대체 그 ‘C 양’이 누구지?”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고 불렀다.

단순히 숨 쉬고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묻고, 그 물음 속에서만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거기에 던져진

존재’로서, 자기 아닌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C양도 그랬다.

입사 3년 차. 팀워크, 친절, 헌신, 열정이라는 단어들은

어느새 그녀의 캐릭터가 되었고, ‘정체성’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료들의 입을 통해 만들어진, 타인의 언어로 재구성된 정체성이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스스로 선택한 자아가 아닌,

타인의 말로 덧칠된 자아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칭찬은 에너지였고, 기대는 동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에서의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극이 커졌다.

동료들이 칭찬할수록, 그녀는 자꾸만 자신이 그 인물과

닮지 않았음을, 아니, 아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현존재는 항상 아직 되지 않은 존재다.”

그러나 C양은 되지 않은 존재이기는커녕, ‘타인의 기대에

의해 완성된 가짜 자아’로 기능하는 기계에 가까웠다.


어느 날 그녀는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누구지?”

그리고 곧 깨달았다.

나는 단 한 번도 ‘나’인 적이 없었다.


현대인의 자아는 대부분 분절된 채로 존재한다.

회사에서의 나, 집에서의 나, 온라인 속의 나, 침묵 속의 나. 하이데거의 말대로 우리는 늘 ‘던져진’ 존재고, 그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쓴다.

다만 문제는, 무엇이 되고 있는지조차 우리가 결정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 있는 게 두렵다.

혼자 있는 순간, 타인이 부여한 모든 역할이 사라지고,

남는 건 공허한 ‘나’뿐이니까.


그리고 그때, C양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회사에서 칭찬받는 ‘그 여자’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건 아닐까?

나 아닌 그 ‘캐릭터’를 더 사랑하는 건 아닐까?”


그녀는 오늘도 그 ‘그녀’를 연기하며 회의실 문을 연다.

오늘의 체크리스트: 밝은 미소, 친절한 피드백,

야근도 감내하는 열정.


그녀는 이제 어렴풋이 안다.

진짜 ‘나’는 아직 어디에도 없다.

그녀는 현존재이되, 항상 부재중이다.


자아는 정시에 출근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대가 오늘도 낯선 누군가를 연기하고 있다면,

너무 놀라지 말자.

그게 바로, 현대적 존재 방식의 매뉴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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