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자의 항해, 그리고 관 위에 떠오른 생의 아이러니
허먼 멜빌 『모비 딕』의 첫 문장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
Call me Ishmael.
성경 속 광야의 이방인, 이스마엘처럼
그는 이름 없이 떠돌고,
바다에서 정체성을 다시 주워 담아야 할 운명을 가진 자다.
멜빌의 『모비 딕(Moby-Dick, 1851)』은 단 세 단어로
시작되지만 그 단어들의 깊이는,
수면 아래 거대한 고래처럼 상상 이상으로 깊고 묵직하다.
모비 딕은 겉보기엔 고래를 쫓는 항해기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광기, 신념, 숙명, 실존을 다룬 철학적 서사다.
이스마엘은 낯선 선박 ‘피쿼드호(Pequod)’에 승선해,
모비딕에 대한 집착으로 타오르는 선장 에이해브와
공동의 운명을 갖게 된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다리 하나를 앗아간 흰 향유 고래,
모비 딕을 죽이는 것.
그러나 이 거대한 여정은, 거꾸로 선장과 선원들 모두를
집어삼킨다.
복수는 끝내 완수되지 못하고, 바다는 모든 이들을 연기처럼 집어삼킨다.
오직 단 한 사람.
화자 이스마엘만이 살아남는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그 자체로 죽음과 삶의 아이러니한
반전이다.
이스마엘의 유일한 친구였던 퀴퀘그는 열병에 걸려 자신의 시신을 담을 관을 준비해 둔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회복되고,
그 관은 임시 구명부표로 개조된다.
그리고 마침내 피쿼드호가 모비 딕과의 최후 대결 끝에
침몰하는 순간, 그 부표가 바다 위로 떠오른다.
이스마엘은 그 관에 의지해 이틀을 버틴 끝에 구조된다.
그를 건진 배는 또 다른 상처를 가진 자,
모비 딕에게 아들 둘을 잃은 레이철호(Rachel)였다.
죽음을 위해 준비된 관,
죽은 자의 흔적 위에 놓인 산 자,
죽은 아들을 찾아 헤매던 배가 생존자를 구하는 구조선이
되다.
이 얼마나 묘하고, 또 슬픈 구원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즐겨 가는 ‘스타벅스’라는
커피 체인의 이름은 어디서 온 걸까?
바로 이 소설 속, 이성적이고 침착한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이다.
그는 끝까지 선장의 광기를 견제하려 했던,
이야기 속 가장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인물이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스타벅스의 로고를 바라볼 때마다
문득 바다 한가운데를 떠도는 이스마엘,
그리고 그를 감싸던 죽음과 삶의 층위를 떠올려보게 된다.
『모비 딕』은 출간 당시 실패작이었다.
너무 길고, 너무 난해하고, 너무 철학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작품은 미국 문학의 ‘심연’이 되었다.
인간은 결국, 인생이라는 바다 한가운데 관 하나를 붙잡고
이름 없는 존재로 살아남는 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