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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젊은 오늘, 다시 선택을 말하다

by 김지향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석가의 말은,

불경 중에서도 가장 철학적인 경전이라 불리는

*화엄경 (華 嚴 經)*의 정수다.

그 방대한 가르침 중 내가 자주 떠올리는 구절이 있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이 단순한 문장은 매번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나를 다잡아 준 말이기도 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신봉했다. 온갖 산나물에 들깨를 넣어야 구수한 맛이 산다고 믿었고,

한복은 왜 더 자주 입지 않는지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판소리만 들으면 어깨가 들썩였고, 풀 한 포기에도

어머니의 손맛과 풍토의 정취가 서려 있다고 여겼다.

그런 내가 고국을 떠나 미국 텍사스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얼마나 기이한 전환인가.

나는 지금도 가끔 거울 속의 내가 ‘나'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한 편 의 다큐멘터리처럼 생의 풍경은 전혀 다른 배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선택의 순간을 되짚어보면,

늘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이었다.

심리학자 커트 루인(Kurt Lewin)은 이렇게 말했다.


"변화란 두려움을 동반한 상태이며,

인간은 기존의 구조를 깨뜨리는 것을 본능적으로

회피하려 한다."


<변화 저항의 법칙>은 단지 물리학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심리도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나 역시 새로운 땅에 뿌리내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기존의 세계가 무너지고 익숙한 언어가 사라지며,

나를 증명해 줄 이력조차 재해석되야만 하는 그 낯설고

쓸쓸한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건...

용기보다는 미지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것이 있었다.

바로 역사 속 인물들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이다.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 직전,

참모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까지의 전투보다, 이 항해가 더욱 두렵다.

이 바다 너머에 있는 것이 내가 원하는 세상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모할 만큼 용감하던 황제조차, 낯선 항해 앞에서

불안해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늘 그렇게, 낯선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내가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젊은 '지금'이라는 사실이

매일 나를 다시 걷게 만든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인생이라면,

애초에 오답도 없는 것 아닐까.

설령 뭔가를 잃게 되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나였다는 것을,

그 여정만큼은 내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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