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삶은 의외로 단조롭다.
광활한 대륙 위의 끝없이 펼쳐진 풍경과 달리, 그 안에 사는 나는 종종 생활의 반경이 손바닥만큼 작다고 느낄 때가 있다. 특히 나처럼 이미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 한 후에
이곳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물론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여전히 학교 동창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교우하고,
명절이면 대가족이 모여 식사를 함께하는 등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나는, 교직이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교사들과의 대화가 그저 업무에 관할 때가 대부분이다.
교사의 대다수가 이 지역에서 학교를 마치고 한 학교에서
20년 이상을 근무해 온 사람들이다.
나는 비교적 사교성이 있어 ’미친 친화력‘이라는 말을 듣기도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뚫을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럽게 나는 '오우아(吾友我)'라는 말을 담게 되었다.
‘내가 나의 친구가 된다‘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나(吾)'와 '벗(友); 그리고 다시 '나(我)'가 나란히 놓여 있는
표현이다.
중국 고대 철학자 장자가 인간 내면의 자유와 평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주 인용하던 말로도 알려져 있다.
진정한 자유란 외부에 기대지 않고,
내면의 나 자신과 친구가 되는 데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을 삶의 작은 신조처럼 품고 살고 있다.
일이 끝난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르는 작은 북카페, 계절에 따라 변하는 하늘빛을 멍하니 바라보는 공원 벤치,
그리고 늦은 저녁 혼자 써 내려가는 노트 속 글들.
그것들이 어느새 나와 친구가 되는 소중한 의식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 살던 시절 인사동 골목의 찻집에서 외국인
교수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기억을 자주 떠 올린다.
그 따스한 대화와 느릿한 호흡의 풍경이 그립지만,
이제는 꼭 그런 외부의 장면이 아니더라도
나는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인생이란 결국, 외로움을 부정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진짜 친구는 어쩌면 거울 속 나의 눈빛,
조용히 차를 데우는 나의 손끝,
그리고 더는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 없이도 계속 써 내려가는 문장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우아(吾友我), 나는 오늘도 나와 친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