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붓으로 세상을 어루만지듯,
그림은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다독인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의 색채와 따뜻한 미소가 나에게 건넨 말들을 나누고 싶다.
가난할 뿐 아니라 그다지 화목하지도 않은 분위기의 집에서 태어난 르누아르는 어린 시절부터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생계를 도왔다. 어린 나이에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그에게, 산업화는 또 다른 시련이었다. 공장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자, 수공예 장식 미술이라는 그의 기술은 일자리마저 앗아갔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당시 예술계의 중심이었던 아카데미나 살롱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럼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그림은 현실의 빈곤과 고단함 속에서도 기묘하게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마네, 모네, 드가, 캬유보트, 세잔 등 당대의 인상주의 화가들 역시 그의 색채 감각과 빛을 다루는 능력에 찬탄을 보냈다.
나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저 르누아르의 작품을 보며 얻는 안도감과 위로.
그의 그림 앞에서 따뜻해지는 나의 일상과 행복의 여정을
나누고자 한다.
무엇보다 그를 내 마음에 깊이 담게 된 건 그의 철학이다.
“나는 벽에 걸었을 때, 벽에도 예쁨이 묻어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 말을 듣는 순간부터 이미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이 유독 행복해 보이고, 즐겁고,
평화로운 이유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말에 답이 있다.
“그림 속에서는 누구도 가난해서는 안 된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모델은 주변의 평범한 친구들이었다.
귀족도, 상류층도 아닌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식사, 포도주, 햇살 한 줌. 그 따뜻한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뱃놀이 일행의 오찬(Luncheon of the Boating Party)이다.
파란색 양산, 주홍빛 스카프, 붉은 와인의 반짝임, 그리고
웃음 짓는 사람들의 시선이 서로 교차하는 장면은 마치
따뜻한 오후의 햇살 같다.
그림 속 시간은 멈춰 있고, 누구 하나 외롭거나 소외되지
않는다. 그곳엔, 르누아르가 바랐던 세상이 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Dance at Le Moulin de la Galette )‘역시 그러하다.
몽마르트 언덕 아래, 파리의 평범한 시민들이
일요일 오후를 즐기며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다.
빛이 스며드는 나무 그늘 아래, 커플들이 웃으며 돌고 돈다. 빠르게 그려진 붓터치, 흔들리는 드레스, 햇살이 비추는
맥주잔의 반짝임은 그 장면이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게 만든다. 그림은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참 다행이지?”
말년에 관절염으로 몸이 마비되는 고통 속에서도
르누아르는 붓을 놓지 않았다.
붓을 손에 고정시키는 천 조각과 끈으로 고정하고,
마비된 손을 옮겨가며 그는 끝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를 지켜보던 친구가 물었다.
“왜 그토록 고통스럽게까지 그림을 그리느냐”고.
그때 르누아르는 말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그의 그림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예쁜 것이 아니라, 고통 너머에 남겨진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가 그 안에서 위로를
받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림은 어느 순간 우리 마음의 풍경을 바꾸고,
기억의 창문을 닫지 못하게 한다.
벽에 걸려 있지만 마음속에 들어오는 그림 한 점이
우리 삶을 얼마나 다정하게 물들일 수 있는지,
르누아르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는 “누구도 가난하지 않은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따뜻한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르누아르가 그토록 사랑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오늘의 나와 당신이기를.
그림 속 인물처럼, 햇살 아래서 웃으며
조용히 살아가는 하루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