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피닉스에서 시작된다
미국을 여행할 때, 우리는 흔히 뉴욕,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시카고 같은 ‘유명한 도시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도시들은 각 주의 주도가 아니다.
뉴욕주의 주도는 ‘올버니’, 캘리포니아는 ‘새크라멘토’,
텍사스는 ‘오스틴’, 그리고 플로리다는 ‘탤러해시’.
이름은 생소하지만 행정의 중심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다.
그러나 애리조나 주만큼은 다르다. 피닉스(Phoenix)—
이름 그대로 이 도시는 사막에서 솟구쳐 오른 불사조처럼,
미국 서부의 속도감 있는 변화와 실험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피닉스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이자,
구글 웨이모(Waymo)의 완전 자율주행 택시가 실생활에
상용화된 최초의 도시다.
‘운전자 없는 택시’라는 개념이 더 이상 미래가 아닌 일상인 이곳에서 기술의 진보가 풍경을 바꾸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 도시가 내게 유독 흥미로운 이유는
야구와 미래가 공존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피닉스는 매년 2월부터 3월까지 메이저리그(MLB)의
15개 팀이 스프링 캠프를 위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야구 유망주들이 빅리그에 진입하기 전 가장 중요한
무대인 MLB Combine이 열리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 시기엔 마치 도시 전체가 야구 이벤트장이 된다.
막내아들이 MLB Combine 초청을 받아 피닉스로 다시
오게 되었을 때, 나에게 이 도시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피닉스의 한 호텔 로비에서 믿기 힘든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아들이 로비에서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나누더니,
웃음을 머금고 신나는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엄마, 저분이 Jack Leiter의 아버지예요.
예전에 Yankees에서 뛰었던 전설적인 투수요.”
그는 잭 라이터(Jack Leiter)의 아버지 알 라이터였다.
아들은 밴더빌트 3학년 시절 1 라운더로 지명돼 현재
텍사스 레인저스 팀에서 활약 중인 잭 라이터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서로 몇 마디 야구 이야기를 나누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들에게는 자기가 꾸는 꿈을 이룬 스타플레이어를 만나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렇듯 피닉스는 야구를 꿈꾸는 청춘과 미래 기술이 나란히
질주하는 살아 있는 실험실이자 거대한 스포츠 콤플렉스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는 늘 예상치 못한 우연이
삶의 에피소드로 남게 된다.
다음 날, 아들과 나는 MLB Combine이 열리는 구장 옆
작은 커피숍에 들렀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청년이 우리를 힐끗 보더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어제 로비에서 알 라이터랑 얘기하던 투수 맞지?”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도 이번에 MLB Combine 참가 중이야.
뉴저지에서 왔고, 나의 아버지도 브루클린 출신 투수야.
나 그분한테 사인도 받고 싶었는데, 피닉스에서 만나니 정말 신기하더라…”
그렇게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들과 청년은 스무디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타석, 유망주로 불리던 압박감,
부모와 함께 견뎌야 했던 순간들.
각자 다른 도시에서 왔지만 오랜 친구처럼 웃고 떠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야구가 만들어준 우연한 인연,
피닉스가 허락한 작은 추억이었다.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이상하게도 이 날 저녁의
피닉스는 사막 위의 도시 같지 않았다.
그건 마치 이야기가 공기처럼 떠다니는 도시,
미래의 꿈나무들이 도전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