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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스케치한 명화(名畫)

밀레의 <만종>

by 김지향

인생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던가.

삶의 형상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버거운 때가 많지만,

그림이나 음악, 문학 같은 예술 작품은 그 무게를 잠시

잊게 만들고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종종 그림 감상에 빠지기를 즐긴다.

그것은 지친 하루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의식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밀레의 「만종」은 내게 특별한 위안을 주는

그림이다.

루브르 박물관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 유명세보다 그림이 지닌 침묵의 울림에 깊이 매료되었다.


고단한 하루의 끝자락,

붉은 노을이 지는 들판에 서 있는 농부 부부.

멀리서 들려오는 교회의 종소리에 맞춰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

고된 하루의 일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옷차림.

부부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울퉁불퉁 거친 땅.


그런데 이 그림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다.

농부 옆의 감자 자루는 사실 어린아이의 관이었다고 한다.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났지만, 결국

굶주림에 아기를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이 담긴 그림이었다. 너무 충격적이라는 친구의 조언에 따라 밀레는 그 관을

감자 자루로 바꾸어 출품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자외선 투사 작업을 통해 수십 년 뒤 이 사실이 알려졌다.


숨은 배경을 듣고 나니 그림이 다르게 보였다.

첫눈엔 평화로웠던 장면이 애잔한 인생의 단면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살바도르 달리의 말이었다. 그는 이 그림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당시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 기억 속에서 흐려지고, 심지어 하나의 이야기로 환원되기도 한다. 그 시절에는 비극 같았던 순간이 세월의 물결을 타고

‘그땐 그랬지’ 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옛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림 한 점은 그렇게 삶의 밀도를 담는 동시에,

우리의 시간과 감정을 희석하는 마술을 부리기도 한다.


그림 속의 기도하는 부부를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예술이 우리 인생의 명암을 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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