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글로벌 1위,
일명, ‘케데헌(K‑Pop Demon Hunters)‘
처음 화면에서 제목을 보았을 땐, 그저 또 하나의 <K-팝
활용 콘텐츠>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작품을 본 뒤,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이라는 문화가
축적해온 감각들이 지금 어떻게 세계 언어가 되고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무대 아래에선 악령과
싸우는 K-팝 스타들. 이 이중 구조는 단순한 장르적 혼합을 너머 지금 이 시대 청춘들의 삶의 은유, 우리가 어떤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생생한 주석이었다.
소니가 미국 자본을 들여 만든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적인
리듬과 미학이 글로벌문화 콘텐츠의 코어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춤, 조명, 음악, 의상, 감정의 흐름,
캐릭터의 서사까지—그 모든 층위가 K-팝을 단순한 대중
음악 장르가 아닌 하나의 세계관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창작의 중심에 한국 아티스트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더 이상 문화를 수입하거나 모방하는 나라가 아니라,세계가 롤모델로 따라오는 ‘감성의 축’이라는 걸 보여준다.
이 작품을 보며 나는 문득 1990년대 초, 유학 시절에 보았던 유럽 공항의 광고판이 떠올랐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암스테르담, 어디를 가도 공항 카트
손잡이에 붙은 광고는 단연, 일본의 소니(Sony)였다.
그 광고 하나가 그 나라의 상징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 후 90년대 후반, 그 자리에 하나둘 삼성과 LG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비로소 우리가 세상에 이름을 새기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지금, 그 이름은 단순한 브랜드를 넘어서 글로벌
문화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문화 현상학의 관점에서 볼 때, ‘문화’는 단순한 생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의 공명, 기억의 퇴적, 그리고 집단적
정체성이 빚어내는 살아있는 패턴이다.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은 바로 그 패턴의 진화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며 만들어낸 ‘감각의
언어’가, 이제는 판타지 장르의 서사 구조 안에서 악과 싸우는 신화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건 하나의 문화가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세계 속의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오랫동안 문화를 ‘수출’한다고 표현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수출’이라는 단어조차 낡아 보인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세계의 감각이 이미 한국의 리듬으로
맞춰지고 있다면, 그것은 교역이 아니라 ‘재조율’이다.
언어가 없어도 감정이 통하고, 자막이 없어도 움직임으로
이해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문화는 세계적 언어가 된다.
지금의 한국 문화는 그 언어 구조의 정점에 있다.
케데헌(K‑Pop Demon Hunters)을 본 세계의 10대들이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고, 등장인물의 춤을 따라 추며
SNS에 올리는 모습은 단순한 팬심의 발현이 아니다.
그것은 ‘참여’이며 ‘채택’이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부터,
한국은 ‘해외 콘텐츠’가 아니라, 글로벌의 중심이 된다.
누군가가 이 시대를 정의할 때,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21세기 초, 세계는 한국이라는 장르 안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장르 안에, 나도, 당신도 함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