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척 빠르게 변화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될 것만 같고,
조금만 늦장 부려도 기회는 타인이 가져갈 것 같고,
잠깐 한눈을 팔면 뒤처진 사람이 될까 두렵다.
그래서 우리는 쉼 없이 배운다.
경쟁하고, 확보하고, 버티고, 또 싸운다.
지치지 말아야 하고, 아파도 괜찮은 척해야 한다.
그래야 덜 초라하고, 그래야 남들만큼은 따라간다.
그러나, 나는 가끔
가만한 일상을 꿈꾼다.
알람 없이도 천천히 눈이 떠지는 아침.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을 때,
몸의 어디도 뻐근하거나 아프지 않은 그 개운한 느낌.
창문을 열자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오늘 하루를 환하게
약속해 주는 듯한 그런 순간.
황후 식탁 부럽지 않은 든든한 아침 상
청양고추 가득한 계란말이, 콩범벅 밥 한 공기,
바질향 나는 오이무침, 연두부에 볶은 김치.
소소한 식탁에 감사함이 더해져 먹는 내내 식탐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무심코 휴대폰을 열었는데,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오는 제자의 문자.
“선생님, 잘 지내시죠?”라는 인사가
하루를 가볍게 띄워주는 연료처럼 다정하게 느껴진다.
차를 타고 출근길에 나서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노래가 나를 반긴다.
오랜 친구가 안부를 물어올 때처럼 안온하고 뿌듯한 기분.
신호도 막힘 없이 이어지고, 주차도 수월하다.
오전 업무는 시냇물처럼 평화롭게 흐르고,
아무런 잡음 없이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찾아온다.
오늘 점심은 동료와 나눈 즐거운 농담 하나로 웃음이 터지고,
어쩐지 허술한 도시락도 함께하니 근사한 코스 요리가 된다.
눈 깜짝할 사이, 해가 기울고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큰 성과는 없지만, 작은 실수도 없었던 평범한 하루.
이보다 더 나쁠 것도, 더 좋을 것도 없는 무난한 일상.
귀갓길에 들른 마트에서
장바구니에 넣으려던 물건들이 전부 세일 중이라는
소소한 행운.
이 정도면 오늘 하루는 제법 운수 좋은 날이다.
집에 도착하니 따뜻한 불빛 아래
가족들이 모여 있다.
TV 소리에 웃음이 섞이고,
저녁 식탁 위엔 익숙한 반찬들,
그리고 남편의 “오늘 어땠어?”라는 말.
그 질문 하나에
오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무탈했다는 사실이 오늘 하루의 가장 큰 기쁨이자
성과라는 걸 깨닫게 된다.
누군가는 지루하다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아무 날도 아니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건 거창한 성취가 있는 일상보다
고요하고 단단한 평온이다.
이런 하루가 쌓여 만들어지는 인생이라면,
나는 그 삶이 좋다.
나는 그런 삶을 오래도록 꿈꾸고 싶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가만한 일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