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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욕망으로 직조된 인생을 꿈꾸다

by 김지향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내가 원하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후회 없이 욕망하고 꿈꿔온 삶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한국에서 강의도, 연구도 열심히 했다.

논문도 많이 쓰려고 노력했으며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것이 성취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주위에서의 시선, 소모적인 줄다리기, 말 없는 견제들.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가 생각했던 ‘학자의 삶’과

멀어지고 있었다.

이건 내가 바라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6년, 현재 미국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당시 두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누군가는 자녀 교육 때문이라 했고,

나는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시절 나는 다만, 더 다양한 삶을 욕망해보고 싶었다.

다양한 선택이 열려있는 넓은 세상,

더 자유로운 사고의 공간을 원했다.

어떤 직함 하나에 나를 가두기엔, 내 안엔 아직 덜 살아 본

무언가가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은 결국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욕망한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이민 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일상이 투쟁이었고, 피해 의식, 자격지심이란 단어가 늘

함께였다. 하지만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낯선 규칙, 완전히 다른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내가 몰랐던 능력을 매 순간 꺼내 써야 했다.


가끔은 내 두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마치 이 모든 이주가 그들을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나는 그 서사를 도구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강한 책임감으로 늘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들의 노력과 성취에 기대어 버텼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었다.


이민자의 삶은 여전히 낯설고 외롭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건 존재 자체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과정 속에서, 나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다.

이전엔 생각해 본 적도 없던 가능성들을 만나고,

내 욕망의 방향이 꼭 하나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배웠다.


욕망이 단일한 사람은 단조로운 인생을 산다고 믿는다.

나는 다양한 욕망으로 꾸며진 입체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

그 여정에서 오늘 하루가 온전하길 바라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나 자신의 성장을 언제나

꿈꾸고 있다.

롤러코스터 같은 날들이었다.

어느 날은 맨 꼭대기에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고,

다음 날은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마음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 스릴조차 삶의 기쁨이었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늘 해뜨기 직전이다.

두렵고 혼란스러운 밤이 있었기에,

아침이 눈부신 게 아닐까?


나는 여전히 조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욕망해보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확장하는 가장 유효한 방식이니까.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갈림길을 선택해 왔다.

때로는 머뭇거렸고, 때로는 길을 잘못 들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도와 욕망의 변주들은 결국 한 줄기의 의지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내 어머니가 평생 꿈꾸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어머니가 바라기만 했던 자유와 선택과 도전의 삶을,

이제는 내가 욕망하고, 감당하고, 사랑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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