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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영어의 유쾌한 반란

영어보다 더 영어 같은 ‘콩글리쉬’

by 김지향

“핸드폰 좀 줘봐.”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그들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Hand phone? 뭐라고?”

‘손전화기(handheld telephone)’ 같은 걸 상상할지 모른다.

영어로는 셀폰(cell phone)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왜, 셀(cell)일까?

그건 이동통신 기술이 ‘셀’ 단위(cellular structure)로

지역을 분할해서 연결하기 때문이다.

지도를 벌집처럼 나눈 각 구역—그것이 곧 ‘셀(cell)‘이다.

그래서 ‘셀폰’이라는 말은 기술적 구조에 기반한 정통파

용어다.

하지만 기술에 덜 관심 있는 우리로서는 딱히 감이 오지

않는다.


한국인의 언어 감각은 참으로 기민하고 재치 있다.

휴대전화가 처음 나왔을 때, 그걸 어떻게 부를까 고민한 끝에

“손으로 드는 전화기”라는 아주 직관적이고 기능적인

명칭을 붙인 것이다.

‘핸드폰‘


영어권 사람들에겐 어리둥절한 단어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가까운 미래에 ‘핸드폰’이 역수입되어

영어권 사전의 ‘지역 표현어’로 등재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실제, 옥스퍼드 사전에는 이미 ‘K-drama’나 ‘스킨십’ 같은 표현이 올라가 있다.

사회 전반으로 이렇게 뿌리 깊게 퍼졌다면, 이건 단순한

‘외래어 오용’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언어 진화 현상이다.


이런 ‘콩글리쉬’ 현상은 ‘잘못된 영어’가 아닌 ‘한국식 영어’로 확장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문화와 맥락이 만들어낸 신조어이자,

그 시대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창조해 낸 일종의 언어적

발명품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 “오버하다”: 영어 ‘over’에서 온 듯한 뉘앙스. “쟤 좀 오버야”라고 하면, 과장되거나 지나치다는 의미다.

• “스킨십”: skin + relationship의 하이브리드. 영어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지만, 한국에서는 애정 표현의 강도와 관계성을 아주 미묘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다.

• “눈팅”: 눈 + meeting? 눈 + surfing? 아무튼 ‘보기만 하고 참여하지 않는 행위’를 이렇게 절묘하게 압축한 단어는 한국어밖에 없다.

• “서비스”: 공짜로 덤을 주는 행위. 영어권에서는

service는 ‘서비스 제공’이지만, 한국에서는 ‘한 개 더 넣어 드릴게요~’라는 마법의 말로 재탄생했다.


한국인의 언어 표현 능력은 재치 있고 창의적이다.

상황에 맞게 빠르게 응용하고, 필요한 만큼 조립해 낸다.

콩글리쉬는 그래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 자랑할 일이다.

그건 언어의 사회성을 증명하는 현장이고,

한국인의 창의성과 유연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내게 ‘핸드폰은 영어가 아니에요’라고

지적하더라도,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기다려보세요. 조만간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될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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