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026 학기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열흘 동안의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마친 캠퍼스에,
긴 여름을 보낸 학생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캠퍼스의 공기는 여전히 더운 햇살 덕에 눅눅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 새로운 흐름이 스며든다.
가방 속에는 교재와 노트가, 마음속에는 각자의 다짐과
두려움이 함께 들어 있다.
지금이야말로 ‘시작’이라는 단어의 깊은 의미를 곱씹기에
적합한 때이다.
우리말 *시작(始作)*은 단순한 ‘처음’을 넘어선다.
‘시(始)’는 시작하다, ‘작(作)’은 만들다, 일하다, 행동하다를 뜻한다. 이 조합은 시작이란 단순한 출발이 아니라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임을 드러낸다.
라틴어 ‘시작하다’의 incipere 역시 흥미롭다.
in- (안으로)와 capere (붙잡다)로 구성된 이 단어는
“손안에 쥔다”라는 물리적 감각에서 출발한다.
독일어 beginnen과 영어 begin은 모두 “무언가를 붙잡아 시작하다”라는 뉘앙스를 지닌 어원을 공유한다.
이 두 단어는 인도유럽어족 공통 조어에서 비롯되었으며,
고대 영어 beginnan은 “잡다(take), 움켜쥐다(seize)”를
뜻하는 접두사 *be-*와 “길, 행위”를 뜻하는 ginnan에서
비롯되었다.
즉, 단순히 시간상 ‘시작하다’가 아니라, 의지를 담아
무언가를 붙잡아 자신의 행위로 만드는 적극적 개시의
감각이 내포되어 있다.
스페인어 empezar와 러시아어 начать 역시 공통적으로
‘붙잡고 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언어들은 문화마다 다르게 변주되었지만,
시작을 ‘붙잡는 행위’로 본 관점은 놀랍도록 일관된다.
이는 결국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첫 원인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지적한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시작은 그 자체로 방향을 정하고 에너지를 부여하는
첫걸음을 뜻한다.
플라톤도 『국가』에서 “어떤 일이든 그 출발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초기의 방향이 모든 과정을 결정짓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행동하라, 그러면 그 행동이
마음을 바꾼다”라고 했다. 마음이 변해야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행동이 마음을 움직이고, 그 첫 행동이
곧 시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계획, 충분한 시간, 이상적인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림 속에서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작은 결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선택하는 순간이다. 미완의 준비라도 괜찮다.
*작(作)*이 말하듯, 시작은 곧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까.
문턱 앞에서 머뭇거리는 대신, 발을 내디뎌 보자.
문을 열고 세상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그 첫 발을 내딛는 자신을 믿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