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나서야 하는 이유
문명이 발달하기 전의 여행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고난의 길이었다.
몇 주, 혹은 수개월을 걸어야 했고, 때로는 강도의 습격을
받아 가진 것을 잃거나, 사나운 짐승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여행의 본질이 그 어원 속에도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영어의 travel, 불어의 travail은 모두 라틴어 trepalium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고통을 주는 형틀을 의미한다.
여행이 곧 고통과 시련의 동의어였던 셈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여행은 달라졌다.
첨단 기술과 교통의 발달은 여행을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모험이 아니라, 일상으로부터의 보상,
즉 상(reward)의 개념으로 바꾸어 놓았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곧 ‘여행하는 인간’이라 불렀다.
비아토르는 걷는 자, 지나가는 자를 뜻한다.
이는 곧 인간이란 정주(定住)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길을 나서고 발걸음을 옮기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인생 그 자체가 예측 불가능한 여정이듯, 여행 또한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길 위에서 우리는 수많은 우연과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목적은 수정되고 새로운 의미가
더해진다. 삶 역시 그러하다. 예기치 않은 사건이 삶의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가장 큰 전환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여행은 또한 일탈의 의미를 지닌다.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숨을 고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회복력을 얻는다.
독일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말했다. 여행은 바로 그 자유의 실천이다.
매일 반복되는 공간을 떠나, 전혀 다른 세계와 조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넘어선다.
여행은 상처를 치유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오래된 마음의 흉터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의 경험은 우리가 그 상처와 다른
시선으로 마주하게 하며, 불현듯 다시 살아갈 힘을 준다.
푸코가 말했듯, “인간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에서만
머물 수 없는 존재이며 언제나 길 위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여행이야말로 우리를 다시 삶으로 불러내는 가장 본능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결국, 우리는 걸어야 한다.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길 위에서 만나는 낯선 풍경, 예기치 못한 우연, 그리고
스스로를 초월하는 자유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그렇기에 여행은 선택이 아니라 본능이며,
유희가 아니라 존재의 증명이다.
삶이란 거대한 여행 앞에서 두려움 없이 길을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