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우리를 낯선 풍경 속에 던져 넣고,
예술은 그 낯섦을 언어와 이미지로 표현된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여행 도중에 생기기보다는
귀환 이후에 비로소 드러난다.
집으로 돌아와 오래 쓰던 찻잔을 들었을 때,
혹은 늘 보던 거리를 다시 걸을 때,
우리는 문득 그것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의 체험을 색채로 옮겨왔듯,
많은 예술가들은 귀환의 순간에야 길 위에서 얻은 내적
변화를 작품으로 풀어냈다.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기 발견의 여정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길 위의 경험은 집 안의 책상 위에서
숙성되고, 결국 예술이나 삶의 태도로 남는다.
역사를 돌아보면 귀환의 순간이 오히려 더 큰 전환점을 만든 사례는 흔하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동방에서의 여행보다,
귀국 후 그것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더 큰 파급력을 발휘했다.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역시 길 위에서의
격정보다, 돌아온 후 새로운 세계관으로 변모한 그의 삶에
더 큰 무게를 두게 한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여행이 끝난 후 일상은 결코 이전과 동일하지 않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아주 사소한 일상이 여행의 잔향을 품게 된다.
중요한 것은 길 위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보다,
돌아온 이후 그 시선을 어떻게 간직할 것인가이다.
여행은 끝나도 길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일상이라는 길을 걷지만, 그 길은 더 이상
어제의 길이 아니다.
귀환은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결국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은
떠나는 자가 아니라, 돌아와 다시 길을 읽어내는 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길을 나선다.
예술처럼 여행하고, 여행처럼 살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