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아주 사소한 순간이 묘하게 우리를 변화시킬 때가 있다.
울적한 기분으로 힘없이 앉아있을 때,
말없이 커피를 건네온 친구,
우연히 집어 든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간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대개는 그냥 지나가지만, 어떤 것들은 삶의 결을 송두리째
흔든다. 이를 인연이라 부를까.
사람들은 보통 그것을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보면 오히려 너무 정확해서 필연 같아 보인다.
헬렌 켈러에게 앤 설리번은 단순한 교사가 아니었다.
켈러는 그녀를 통해 세계를 만났고, 설리번은 켈러를 통해
자기 사명을 완성했다.
나이키를 만든 필 나이트 역시 일본 출장길에 우연히 만난
신발 장인 기하치로 오니츠카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작은 대화가 거대한 제국의 씨앗이 된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인연이 꼭 얼굴을 맞대어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톨스토이와 간디는 직접 본 적이 없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 이어진 그 사상적 교류가 훗날 인도의 비폭력 운동을 가능케 했다. 책이란 묘한 힘을 발산한다.
한 문장, 한 통의 편지가 평생의 스승이 되기도 하니까.
스티브 잡스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만든 에드윈 랜드에게서 철학을 이어받았다.
“기술은 예술과 결합해야 한다.” 는 단순한 명제가 잡스의
뇌리에 남아, 결국 아이폰이란 형태로 세계에 구현됐다.
그건 전화기가 아니라, 인간 감각과 직관을 담아낸 문명의
작은 거울이었다.
생각해 보면 인연이란 결국 거울 같은 것 인지 모른다.
누군가를 만날 때 우리는 그를 통해 자신을 보기도 한다.
내가 잊고 있던 것, 아직 다다르지 못한 것, 혹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도.
국경도 마찬가지다. 경계란 벽이 아니라 두 세계가 서로를
비추는 반사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교육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교사는 학생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본다.
학생은 교사를 보며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을 본다.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서로를 비추며 변화하는 일종의
인연 실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을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
하찮아 보이는 우연조차, 사실은 삶의 구조를 미묘하게
바꾸기도 하니까.
인연은 언제나 우리 앞에서 조용히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그것을 알아차릴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