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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의 시, 유럽에 울려 퍼지다

by 김지향

가끔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시를 읽는 사람‘과 ’시를 읽지 않는 사람‘

그만큼 내가 시문학에 진심이라는 얘길 하고 싶을 뿐이다.

외국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해당 언어권의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만큼이나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중요한 사명이다. 문학 번역은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문화 간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 번역을 결심했던 시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었다.

지금도 내 침대 머리맡에는 수십 편의 시가 메모되어 있지만,가장 처음 적어 놓은 것은 이 시였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중략)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우리는 모두 안다. 그가 겪은 모진 고문과 고초를. 그리고

그가 삶의 끝을 넘나들었던 시간들을. 그래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표현하는 그를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시 ‘행복‘에서, 시인은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아내가 찻집을 해서 생활비 걱정이

없고, 자식이 없으니 뒷 일 걱정이 없고, 대학을 나왔으니

배움의 욕심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도 있고, 하나님을 믿으니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이 있어서 불행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이렇게 우린 그의 순수한 세계관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이미 작고하신 뒤라 그의 미망인 목순옥 여사를 찾아갔다.

인사동에서 운영하시던 찻집 ‘귀천’에서 직접 저작권을 허락받고 본격적으로 번역 작업에 돌입했다.

천상병의 시는 언어적으로 단순했지만, 그 속에 담긴 철학과 감성은 깊고도 묵직했다. 그의 시 세계를 세르비아어로

온전히 옮겨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작자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현지 외국인 교수들과협업하며 그의 언어적 뉘앙스를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목순옥 여사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늘 손수 담근 모과차를 내오며,

천상병 시인의 인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렇게

일 년 여의 시간이 흐른 뒤, 천상병 시선집은 마침내

세르비아에서 출판되었다.


한 편의 시가 만든 기적

그의 시에 담긴 순수함과 초월적 세계관은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깊은 울림을 주었다. 현지 언론은 앞다투어 ‘한국의 시인’을 조명했고, 이를 계기로 한국 문학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 열기는 결국 베오그라드 대학교 어문학부에 한국어 강좌가 개설되는 계기로 이어졌다.


나는 깨달았다.

한 편의 시가, 그리고 작은 도전이 이렇게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그것은 마치 작은 눈덩이가 굴러 커다란 보름달이 되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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