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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기회: 유럽에서 길을 만들다

2.

by 김지향

살면서 늘 되새기는 문구가 있다.

바로 한니발 장군의 말, “You will either find the way or

make one.” 해석하면 “방법을 찾던가 아니면 만들든가.”

라는 의미다.

대학 시절, 가까운 선배가 나를 두고 “넌 알래스카에서도

냉장고를 팔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늘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베오그라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생애 가장 큰 현실적 장벽을 마주했다.


이미 금융 시스템이 마비된 상태였고, 은행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환전은 블랙마켓에서만 가능했고, 해외

송금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사관에서 제공한 해결책은

단 하나, 국경을 넘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업에 집중해야 하는 내게 국경을 넘어 은행 업무를 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대학 시절 줄곧 영어 과외를 했던

경험이었다. 정식으로 영미권을 방문한 적은 없었지만,

대학교 3 학년 때 영어 작문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던 기억이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회화 경험은 부족했지만 문법에는 자신이 있었고,

결국 중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비즈니스 회화 강의까지

확대되었고, 마침내 전문 영어 통역사로 자리 잡으며 송금

없이도 학업을 마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시기, 나는 또 다른 흥미로운 기회를 맞이했다.

‘최초 한국 유학생‘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베네통 브랜드의

글로벌 캠페인에 모델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베네통은 다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는 브랜드였고,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대표하는 모델을

찾고 있었다. 시대적 정세와 맞물려 나는 그들의 캠페인에

참여하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 알게 된 방송사 PD 친구가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인 유학생으로서의 경험과 문학을 공부하며 느낀

문화적 차이를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망설임 없이 제안을 수락했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면서 한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재료를

공수해 생방송에서 직접 잡채를 만드는 도전까지 감행했다.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잡채를, 인터넷조차 없던 시절

막연한 기억에 의존해 요리하며 생방송을 진행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처럼 나의 유학 생활은 학문적 성장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닥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도전과 기회는 언제나 함께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시간,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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