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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문을 열다: 학술대회에서 로열패밀리 만남까지

by 김지향

연구자로서의 삶은 끊임없는 학문적 탐구와 더불어,

예상치 못한 도전과 기회의 연속이었다.

2000년대 후반, 내가 소속된 학회 중 한 곳에서 국제

학술대회 실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개최지는 내가 박사

학위를 받은 베오그라드 국립대학교 어문학부로 결정되었다한국에서 수십 명의 연구자들과 함께 현지 학자들과의

공동 학술대회를 조직하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항공권 예약부터 현지 숙박, 행사 장소 선정, 연회 준비까지 모든 것이 나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때마다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다고

꿈꾸는 그 모든 일을 시작하라.”

이미 학위를 받은 지 10여 년이 지나 현지 교수들과의

연락이 뜸해진 상태였으나, 나는 용기를 내어 몇몇 교수님들께 전화를 걸었다.

예상과 달리, 그들은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학술대회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덕분에 베오그라드 근교 여행까지 포함된 완벽한 일정이

구성되었고, 성공적인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준비 과정 중 가장 황당했던 순간을 빼놓을 수 없다. 학회 회의 중 누군가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유고슬라비아에도 왕이 있지 않나? 김 박사 섭외력이

대단하니 이번 기회에 왕궁 방문을 추진해 보면 어떨까?”

순간 나는 그 말을 흘려듣는 대신, ‘왕실과의 접촉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에 빠졌다.

유학 시절, 나는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데디녜(Dedinje)를 지나치며 역사적 궁전들을 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 왕가의 후손들이 거주하는 벨리 드보르(Beli dvor, 백궁)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즉시 현지 교수들에게 연락했고, 국제 전화로 수많은

논의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왕실 초대를 받아냈다.

며칠 후, 한국에서 온 학회 전원이 유고슬라비아 왕가의

후계자인 알렉산다르 왕세자(HRH Crown Prince Alexander II Karadjordjevic) 부부를 알현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후 학자로서뿐 아니라 통역가로 활동하며

여러 국가 정상, 기업 CEO, 유명 인사들을 만났지만,

로열패밀리와의 만남은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무엇이든 진정으로 원하고 노력하면 결국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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