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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려도 길을 잃지 않도록

마음의 등대가 되어준 문장

by 김지향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책이 가득했다.

그 시절 유행처럼 전집을 들여놓는 가정이 많았고,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빳빳한 양장본이 아니라, 손에 쥐기 편한 단행본들이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몽테뉴의 ‘수상록‘, 이어령과

안병욱 교수의 에세이, 그리고 피천득의 ’인연‘. 특히 피천득 교수는 어머니의 대학 은사님이셨기에 그의 수필을 거의

외우다시피 읽었다.

그러나 그 모든 책들 중에서 나를 사로잡은 한 권이 있었다.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였던 버트란드 러셀(Bertland Russell)의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복잡하고 철학적인 내용을 쉽고 간결하게 풀어낸 이 책은

어린 나이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그가

이야기한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한 연민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다.

하지만 한 문장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이것이 내 생애였다. 나는 이런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이런 삶을 다시 살 것이다.”


얼마나 근사한가!

우리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서양 속담에 “남의

담장 너머 잔디가 더 푸르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늘 남의

삶이 더 빛나 보이고,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거라 착각한다. 그런데 그는 ‘기꺼이‘ 같은 삶을 다시 살겠다고 선언했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다른 길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

나는 그 순간 결심했다.

“나도 이런 삶을 살아야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의 철학을 더 깊이 공부할 기회가

생겼고, 그가 어린 시절 엄격한 청교도 교육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일화나 한때 잘못된 세계관으로 인해 불행을

겪었던 부분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인생의 교훈이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시점과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러셀의 삶이 완벽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문장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었고,

그 한 문장이 나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이 삶을 다시 살 것이다.”

이 문장을 새기며, 나는 오늘도 나만의 태양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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