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서점이 되는 날
학교 도서관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한쪽엔 텐트가 쳐있고, 모닥불 모형이 은은한 불빛을
내고 있다. 캠핑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어 책을 펼쳐 들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치 숲 속에서 책을 읽는 기분이 들도록
연출된 공간. 하지만 여기는 캠핑장이 아니다.
올해 주제는 <모험>. 미국 학교의 북페어(book fair) 다.
도서 축제라고 해서 단순히 책을 늘어놓고 판매하는 행사가 아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고르고, 책과 함께하는
다양한 학용품과 액세서리를 둘러본다. 가벼운 키링부터
필기구, 독서 노트까지. 이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선물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마치 놀이 공원에 온 듯한 들뜬 표정들.
이 행사는 단순한 책 판매 이벤트가 아니다.
북페어는 학교 도서관을 지원하고, 지역 사회와 학부모가
함께하는 독서 축제다. 미국에서 이 행사는 20세기 중반부터시작되었다. 출판사와 학교가 협력하여 학교의 도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보통 일주일 동안 학교 도서관에서 열리는 북 페어는,
학생들에게 미리 안내서(Book Fair Guide)가 제공된다.
여기에 행사에서 판매될 목록이 실려있다.
교사들은 ‘위시 리스트(Teacher Wishlist)’를 작성해
학급 도서로 추가하고 싶은 책을 공유한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책을 선물할 수도 있고, 친구들과 함께 읽을 책을 골라 기부할 수도 있다.
또한, 학급 단위로 도서관을 방문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 영어 시간에 학생들은 책을 직접 둘러보고 구매할 기회를
가진다. 학부모들도 이 행사 기간 동안 예외적으로 학교에
들어와 자녀와 함께 책을 고를 수 있다. 미국 공립학교는
보안상의 이유로 학부모가 사전예약 없이 학교에 출입하는 것이 제한되지만, 북 페어 기간만큼은 예외다.
지역 주민들에게도 개장되는 이 행사는 단순한 도서
바자회를 넘어, 학교와 지역 사회가 유대감을 형성하는 장이 된다. 어떤 학교에서는 작가 초청 강연이나 사인회도 열린다.아이들이 실제 작가를 만나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작은 독서 행사가 열리지만, 미국식 북 페어처럼 학교, 학부모, 지역 사회가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는아직 드물다. 단순한 책 읽기 프로그램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 책을 직접 선택하고, 책을 사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 되도록 설계된 점이 다르다.
책을 사랑하게 되는 경험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책을 고르고, 그것이 내 것이
된다는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내가 고른 책”이란 개념이 생기면, 독서는 더 이상 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미국의 북 페어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어떨까?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책을 고르고, 구매하고, 친구와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축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면?
책과 아이들의 거리는 훨씬 가까워질 것이다.
학교에서 책을 사는 날,
아이들이 캠핑장에 온 듯한 설렘을 느끼는 날.
그것이 바로 미국의 북 페어(Book Fair)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