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준 선물-꽃, 빵 그리고 책.
나의 어린 시절에는 특정한 향과 장면이 있다.
하얀 크림이 가득한 엄마표 케이크, 학교에서 돌아오면
코끝을 간지럽히던 갓 구운 카스텔라 빵 냄새.
엄마는 요리 이상의 무언가를 늘 만들어내셨다.
요리 교실에서 배운 새로운 레시피를 활용해 우리 4 남매의 입맛을 업그레이드시켰고, 때론 납작한 쟁반 같은 화병에
침봉을 꽂고 꽃을 장식하시며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셨다.
유독 꽃무늬를 좋아하시는 엄마는 언제나 단정하고 품위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외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안에는 깊은 사유와 따뜻한 배려를 지니고 계셨다.
역사학을 전공하신 엄마는 중국 고전뿐 아니라 서양 철학,
역사책들을 가까이하셨다. 어린 나는 그런 책들을 읽고
내용을 이해했다기보다, 그저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마치 공기처럼, 내 삶에 스며든 지적 습관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날 일깨우신다. 늘 뭐든 배우라고.
그런 환경 덕분에 나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가 말한 ‘아비투스(프랑스어. habitus
가지다, 간직하다)’를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아비투스는 인간 행위를 형성하는 무의식적인 성향이다. 즉, 특정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몸에 익힌 사고방식, 태도, 행동 패턴을 의미한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특별하게 부유하진 않았지만, 엄마는 늘 작은 꽃나무 화분을 들여놓고, 소소한 수건이나 손수건을
예쁘게 포장해 선생님이나 신문 배달원에게 선물했다.
부침개라도 부치면 언제나 이웃과 나누셨다.
그렇게 엄마는 내게 ‘문화자본’, ‘심리자본’, ‘언어자본’,
‘지식자본‘, ’사회자본’을 물려주셨다.
2000년, 나는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강의 다리]를 번역하고 있었다. 그해 9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 국제 문학 포럼”에서 피에르 부르디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책과 예술이 인간의 사고와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큰 자본이 아니라,
지적 풍요를 채워줄 작은 습관들이 아닐까?
엄마가 내게 안겨준 추억들, ‘책, 그림, 꽃, 요리’.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퍼즐을 완성하는 중요한
조각들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