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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만든 긴 이야기

요반 데레티치 교수 가족과의 인연

by 김지향

어떤 기억은 물 위에 남겨진 잔물결처럼 사라지는 듯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인생의 흐름을 정하게 된 결정적 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1990년, 외국어 대학교 강의실에서 나는 요반 데레티치

교수님을 처음 만났다. 마치 미지의 대륙을 처음 밟은

탐험가처럼, 그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모른 채 우리 앞에 섰다당혹감이 교차하는 공기 속에서,

그의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세르비아어 작문 수업이었다.


두 시간 동안 우리는 서툰 문장들을 주고받았다.

단어 하나를찾아내기 위해 머릿속을 헤매는 동안,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스쳤다.

‘이분은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실까?’

엉뚱한 걱정이었지만, 내 오지랖은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점심을 함께하자고 했고, 교수님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향한 학생식당. 그날의 메뉴는 짬뽕이었다.

커다란 그릇을 받아 든 교수님은 낯선 붉은 국물을 조심스레 한 숟가락 떴다. 그리고 이내 감탄사를 연발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포크로 면을 들어 올리는 그의 손길에는 마치 새로운세계를 탐색하는 신중함과 경이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정말 맛있어요!” 감탄과 함께 그는 국물까지 거의 비워냈다.

그러나 내 안에는 묘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의 첫 한국 음식이 짬뽕이라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한국의 더 깊은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에 경복궁을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뜻밖에도 교수님의 눈빛이 반짝였다.

마치 오래 기다려온 초대라도 받은 듯.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주말이면 나는 교수님과 그의 부인을 모시고 서울 곳곳을

함께 걸었다.

재래시장에서는 갓 만든 떡볶이의 매운 향을,

백화점에서는 경제 발전의 흔적을,

고궁에서는 조선 왕조의 이야기를 전했다.

시간이 흐르며 그의 가족과도 가까워졌다.

세르비아에서 친척들이 오면 우리는 함께 서울 곳곳을

여행했다. 그의 외동딸 이리나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유학길에 올랐을 때, 베오그라드 공항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교수님내외였다. 우리는 마치 오랜 가족처럼

서로를 반겼고, 그는 나의 석사 논문 지도교수가 되었다.


베오그라드에서의 생활은 서울에서와는 또 다른 결이었다. 교수님의 부인은 바쁜 저널리스트였고, 평일에는 각자

식사를 해결했지만, 일요일 점심만큼은 예외였다.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그들의 전통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그 가족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리나 데레티치는 우리가 함께 공부한 베오그라드 국립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있다.

우리는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그 시절을 회상한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대학 캠퍼스 학생식당에서 함께했던 짬뽕 한 그릇.

그 작은 우연이 삶의 방향을 바꾼 거대한 서사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이제 당신 차례다.

당신이 기억하는 “짬뽕 같은 순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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