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의 의미와 무게
어릴 때 만우절은 신나는 날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교실 문 위에 칠판 지우개를
걸어놓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면 분필 가루를 맞는 모습을 보고 키득거렸다.
친구에게 “담임 선생님이 너 부르셔”라고 거짓말을 해놓고, 겁에 질린 표정을 보며 고소해했던 기억도 있다.
장난은 짓궂었지만, 대개는 선을 넘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가짜뉴스와 조작된 정보, 소위 “AI 환각(hallucination)“
이라는 기술적 오류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는 더 이상 거짓과 장난을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미국의 누리꾼이 CNN과 똑같은 모방 사이트를 만들어
빌 게이츠 피살을 속보로 전하자, 한국 방송사들은 이를
확인없이 카피보도 한후 사과 방송을 하는 일도 있었고,
BBC는 하늘을 나는 펭귄 무리 영상으로 시청자들을
속인 일도 있었다.
2004년에는 구글이 달에서 일할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올린 적도 있었고, 버거킹이 왼손잡이 와퍼 버거를 출시한다고 하여 웃음를 넘어 소비자들의 분노를 산 적도 있다.
만우절이 유쾌한 날이라기보다는 누군가 속아 넘어가고,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날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우절(April Fool’s Day)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16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그레고리력(현재 우리가 쓰는 달력)이 도입되면서 달력 개편을 몰랐던 사람들이 4월 1일에도
여전히 새해를 축하했다가 조롱받았다는 설이 가장 널리
퍼져 있다. 이렇게 4 월 1 일에 장난을 치는 이상한 관습은
르네상스 유럽에서 시작되어 만우절 농담 문화가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때로 장난은 항상 웃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장난의 무게를 되새겨 보게 만든다.
웃자고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런 ‘거짓말의 날’을 즐길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만우절 장난은 “사회적 유대(social bonding)”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원래 놀이를 통해 관계를 맺는 존재다. 친구와 서로 속고 속이면서 유쾌한 순간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이가 된다.
사회학적으로도 만우절은 일상의 질서를 잠시 깨뜨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평소에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지만, 이날만큼은 허용된다.
이는 마치 카니발 같은 문화적 현상과도 비슷하다.
평소 권위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엄숙함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유희적 공간이 열린다.
그러나, 윤리적으로 보면, 장난과 조작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한다. 만우절이 아무리 허용된 거짓말의
날이라고 해도, 그 거짓말이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악의적 속임수가 된다.
요즘처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만우절의 의미에 대해 한번쯤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과거처럼 선생님이 분필 가루를 맞는 장난은 허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는 장난, 혹은 가짜뉴스를 퍼뜨려 공포나 혼란을 조장하는 행위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윌리엄 진서(William Zinsser)가 말했듯, “좋은 글이란 명확하고 정직해야 한다.” 라는 말은 농담에도 적용된다.
장난도 결국 상대가 웃을 수 있어야 ‘유머’가 된다.
올해 만우절에는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우리가 던진 농담이 정말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속일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웃으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 시대,
우리는 만우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