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은 천천히 살아보는 것이다.
“왜 책을 읽어야 하나요?”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사실 이 질문은 단순한 듯하지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독서가 삶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숨 쉬는 것처럼, 먹는 것처럼 하지 않아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책을 읽는다.
그래서 그 이유를 말해 달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책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인생을 빌려 잠시 그 삶을
천천히 살아보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프란츠 카프카는 독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책은 우리의 생각을 깨뜨리고,
굳어 있는 감정의 표면을 부수고,
전혀 새로운 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 도끼는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날카롭지만 따뜻하다.
나는 늘 그 말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시간 속에 갇혀 살아간다.
어떤 이는 도시의 빌딩 숲을 오가며, 또
다른 이는 논밭 너머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한다.
우리는 자신의 눈으로 본 세상만이 전부라고 믿기 쉽다.
하지만 책은 전혀 다른 시간을 살아낸 이들의 고백이자
사색이며, 상상이다.
독서를 한다는 건 곧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다.마치 포구의 파도 소리와 사막의 바람을 동시에 듣는 것처럼,우리는 책 속에서 수많은 경험을 병렬로 펼쳐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소개한다.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미국 USC의 신경과학자 메리언 스패넬(Marion Spanel)은 실험을 통해, 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이 겪는 감정을 뇌가
실제 상황처럼 반응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나, 운동과 감각에
반응하는 피질 부위가 독서 중에도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즉, 독서를 하는 행위는 뇌의 입장에서 볼 때
직접 체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우리는 소설 속 여행을 '진짜 여행'처럼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 작품 속 세계는 우리의 감정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헤르만 헤세는 『황야의 이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의 소용돌이 속에 놓일 때면 꼭 맞는 문장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책 속의 문장은 때때로 삶의 절벽 앞에서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밧줄이 되곤 한다.
이런 간접 경험이 쌓이면, 사람은 조금씩 더 유연해진다.
‘나’라는 프레임을 넘어 ‘너’라는 존재의 감정, 생각, 배경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곧 공감의 시작이다.
문학은 이 점에서 가장 위대한 도구다.
예컨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속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뇌에 동화될 때, 우리는 비극적인 선택의 이면에 숨은
인간의 연약함을 들여다본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으며, 삶의 부조리 앞에서
무기력한 한 인간의 침묵 속 고독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감정의 체험은 결국 자기 이해를 돕고, 타자를 향한
공감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관계란 결국 소통이며, 그 소통의 기반은 이해다.
독서는 우리로 하여금 감정의 언어를 익히게 하고, 타인의
말과 침묵을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갖춘 사람은 사회 속에서도 더 나은
협력자, 더 깊은 친구, 더 열린 사고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이런 문장을 남긴다.“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결국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금 더 잘 헤아릴 수 있게 된다.”
그의 문장에는 ‘독서’가 인간 내면을 얼마나 부드럽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이처럼 독서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통찰, 나 자신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여정이다.
그리고 이 느린 여정 속에서
우리는 진짜 삶의 속도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살아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