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위로를 건네주는 책.
변변치 못한 나의 우문을 “마치 곶감 빼먹는 것같아”라며
한결같이 읽어주는 벗이 있다.
내가 글을 올리면 가장 먼저 호응해주는 고마운 벗이다.
나의 조용한 사유의 편린들을 응원해 준 덕분에 용기내어
‘독서의 이유’에 대한 생각을 좀 더 풀어보고 싶어졌다.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우리는 살면서 예기치 못한 실패와 좌절을 맞닥뜨린다.
때로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스스로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 앞에 무너진다.
그럴때면 나는 소설속 주인공들의 손을 잡는다.
그들은 저마다의 아픔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고,
때로는나보다 훨씬 더 깊은 절망 속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났다.
<작은 아씨들>의 조세핀 마치는 여성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던 시대에 작가가 되려는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했다.
사랑과 가족,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끝내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는 비록 세상과 어긋난
소년이었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순수함과 진실을
지키려고 했다.
<1984>속 윈스턴 스미스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저항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귀함을 증명하고자
시도했으며 전체주의의 감시와 억압 아래에서도 자유와
진실을 갈망했다
이런 주인공들과의 조우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때론 그들의 고통이 나의 아픔을 이해하게 만들었고,
언제는 그들의 선택이 나의 길을 밝혀 주었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진정한 공감이란 상대방의 세계를
마치 그 사람인 양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독서는 이 ‘공감’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다.
사회학적으로도, 문학은 연민의 감각을 훈련시킨다.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에서
문학을 ‘윤리적 상상력의 확장‘이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직접 겪을 수 없는 타인의 삶을, 책을 통해 상상하고 느껴보는 것은 곧 인간다움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더 넓은 세계와 더 깊은 마음을 품는 연습이다.
혹자는 묻는다. “책을 읽어도 인생의 답은 없던데요?”라고.
그렇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데 책에 답이 있을리가!
그러나 길은 있다.
나는 책이 그 길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나침반이라고 믿는다.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끊임없는 내면의 흔들림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 길이란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할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그는 깨닫는다.
<연을 쫓는 아이>의 아미르는 후회와 죄책감을 짊어진 채
떠났던 여정에서, 끝내 스스로를 용서하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다. 그 길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의 길이었다.
이렇듯 책은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길을 비춘다.
그것도 등불처럼 은은하게, 성급하지 않게,
하루키의 문장처럼 조용하게.
“슬픔은 새벽녘에 혼자 깨어 있는 것과 닮았다.하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새벽이 아주 짧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도 그 짧은 새벽을 느끼며 책장을 펼친다.
몽테스키외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 시간의 독서로 떨쳐낼 수 없는 불안감은 없다고.
그렇게 아픔과 절망과 고뇌를 떨쳐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