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만든 또 하나의 세계: 진심으로 보면 달라지는 것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것을 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있다.
보는 관점, 곧 시선의 방향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빛깔을 바꿔 놓는다.
미국 초등학교 학생들이 필독 도서처럼 읽는
R.J 팔라시오의 소설 『Wonder』는 관점에 대하여
매우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 스스로도 이 소설은 ‘친절의 명상‘이라고 규정했다.
주인공인 10살 소년 어기(Auggie)의 영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옳은 것과 친절한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는 친절한 것을 택하라” 말한다.
이어 친절함을 실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어기는 선천적인 안면 기형을 가진 아이로, 새로운 학교에
등교하면서 타인의 시선 속에서 상처받고 방황한다.
교장 선생님은 어기를 괴롭힌 아이의 부모를 불러 말한다.
“외모를 바꿀 순 없지만, 우리의 시선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그 말에 순간 정적이 흐르고,
무언가가 마음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시선 하나가 사람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고,
학교를 바꾸고, 삶의 결을 바꾼다.
가령, 반쯤 찬 유리컵을 보고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말하는 이 가 있는가 하면,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똑같은 현실이지만, 시선에 따라 삶의 톤이 달라진다. 긍정의 렌즈는 결핍을 희망으로 바꾸고,
부정의 렌즈는 가능성마저 닫아버린다.
이는 단지 낙천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유연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태도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긍정심리학”을 통해, 인간이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발전하는 데 있어 '설명 양식'—즉,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뇌과학적으로도 전전두엽의 활성화는 우리의 감정 조절과 사고방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부정적 감정에 머무르면 편도체가 과도하게 반응하고,
현실을 왜곡된 렌즈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시선을 다르게 가지려는 의식적 훈련은 전전두엽을 단련시켜, 감정을 조절하고 긍정적 행동을 유도한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지만, 돛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탓하고 멈추기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아 조정하는 것.
그것이 곧 희망이며, 인간의 주체적인 삶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기와 꿈』에서
“이미지를 보는 눈을 달리하면, 세상은 전혀 다른 색깔로
피어난다”라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나 더 나은 조건이 아니라, 다르게 보는 용기다.
『어린 왕자』의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기보다, 마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이 사람이고, 관계이고, 삶이다.
결국 중요한 건, 세상을 너무 ‘진지’하게 대하기보다는,
‘진심’으로 마주하는 태도가 아닐까.
진지함은 경직을 낳지만, 진심은 유연함을 준다.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무대를 사는 배우들이다.
연기를 잘하려면, 너무 긴장하기보다 마음을 열고 장면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하루키는 말했다.
“비가 오면, 그냥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할 때도 있다."
삶이 내게 내리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결국 나의 삶을 만들어간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바꿀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시선을
찾아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