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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이 과하면 병이 됩니다

나는 뇌를 아끼기로 했다.

by 김지향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말은 근사하게 들린다.

듣자마자 뇌가 반사적으로 ‘우와!’ 한다.

뭔가 있어 보이고, 공부 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일순간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어, 이거… 공자가 벌써 한 얘긴데?”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

한자식 표현이라 낯설 뿐, 이 얼마나 정교한 메타인지인가.


이렇듯, 요즘 세상은 옛날 사람이 이미 깨달았던

삶의 이치를 ‘새 용어’로 갈아입히는 데 꽤 진지하다.

그리고 그 새로운 용어를 외우고, 자격증 따고,

그것을 다시 강의 콘텐츠로 만들어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나누는 데 바쁘다.

이 모든 과정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공자님이 살아계셨다면, 자격증 몇 개는 따셨을까?”


과학과 산업의 발달은 지식을 정밀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정밀함이 곧 ‘복잡함’이라는 옷을 입으면서,

우리는 자주 지친다.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성찰적 주체(Reflexive agency)’…

멋지지만, 지나치게 어렵고 과하게 길다.

삶의 감각이 언어 뒤로 숨는다.


이건 마치 이런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에게 “오늘 기분 어때?”라고 묻는 대신,

“요즘 정체성 기반 자기 동일성과 감정노동 사이의

균형이 잘 유지되고 있어?“

하고 묻는 꼴이다.


물론 새로운 개념은 필요하다.

시대가 달라지면, 표현도 새로워져야 하니까.

하지만 그 개념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배움이 아니라 시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그냥 ‘아는 척’ 하지 않고 살기로 한다.

몰라도 되는 걸 몰라주는 용기.

이해 못 한 건 그냥 마음으로 느끼는 여유.

그게 더 ‘인간적’ 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원래, 함축된 문장의 간결함을 추앙하는 편이다.

그래서 철학자의 경구나 문학에서의 인용을 기꺼이

곁들이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자제하기로 했다.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복잡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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