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상은 다문화 공존
미국에서 산다는 건, 단조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단조롭지 않음이란 것이 결코 대단한 사건이나 극적인
장면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골목 한 끝에서 다른 저 끝까지 걷는 사이,
나는 세계 여러 나라를 천천히 지나간다.
우리 집 맞은편에는 인도에서 온 가족이 산다.
아침마다 그 집 부엌 창문 너머로 카레 스파이스 향이
공기를 가른다.
조금 더 눈을 돌리면 그리스 출신의 조르조가,
여느 때처럼 잔디를 깎고 있다.
그는 정갈한 미소와 함께 나에게
“Kalimera!”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 옆 집엔 이탈리아에서 온 마르코 부부가 산다.
마르코는 주말이면 직접 구운 빵을 굽는다.
따끈한 포카치아 한 조각에, 하루의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의 이웃에는 이스라엘에서 온 부부도 산다.
때로 그들의 마당에서는 마치 텔아비브의 어느 오후처럼
흘러나오는 음악이 들린다.
다시 조금 더 걷다 보면 파키스탄에서, 멕시코에서,
베네수엘라에서 온 이웃들이 있다.
모두 다른 언어, 다른 음식,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지만,
마치 커다란 샐러드처럼 어울려 살아간다.
미국이라는 그릇 안에서.
어느 때 슈퍼볼(미식축구 결승전)이 열리는 날에는
도시의 거리가 한산하다.
풋볼 시즌에는 대개 이웃들과 ‘게임 데이’를 즐긴다.
우리는 각자 나라의 대표 음식을 한 접시씩 들고 모인다.
인도의 탄두리 치킨, 베네수엘라의 아레파,
그리스의 수블라키, 멕시코에서 온 친구는 수박에
고춧가루를 뿌려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수박을 한입 먹었고, 예상치 못한 조합이 입안에서 퍼졌다.
그건 정말 ‘다문화’가 혀끝에서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경험은 단지 맛있는 음식이나 새로운 향신료를 아는
차원을 넘어선다.
사회학자 마이클 허즈펠드는 이런 문화 교류를 “친근한 다양성(intimate diversity)“이라 불렀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것. 또 다른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cultural hybridity’, 즉 문화적 혼종성이라 말한다.
이와 같은 혼종성이야말로 미국이라는 공동체를 유연하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힘이기도 하다.
나는 거리를 걸을 때마다, 골목이 작은 지구처럼 느껴진다. 각자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어느샌가 우리는 같은 텃밭에서 나란히 토마토를 기르고,
함께 아이들의 자전거를 고쳐주고, 밤이면 야구 경기 중계를 보면서 함께 환호한다.
삶이란 때때로, 그렇게 모여서 만들어진 다채로운 접시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 안엔 치킨 카레와 고추 수박, 그리고 포카치아가 조용히 어깨를 맞대고 있다.
‘구이경지’라 했던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주치고 해를
거듭해서 지내지만 마치 오래 사귀어도 처음 본 듯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는 예의를 잊지 않는다.
미국이란 나라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일상에 스며든
다양성’이다.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가는 방식, 그것이 이 사회의 힘이자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