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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의 곡선

박경리 선생과의 한 점 인연

by 김지향

때로 인생은 목적지 없는 산책처럼 느껴진다.

방향을 알고 있다고 믿는 순간, 길은 이상하게도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발밑에선 툭하고 돌부리가 튀어나온다.

내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박경리 선생의 시 ‘천성’을 꺼내어 읽는다.

마치 어떤 오래된 주술처럼,

인생의 맥을 다시 짚어주는 말들.


2000년대 초반 어느 가을이었다.

나는 여러 문인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의 어느 일식당의 식사

자리에 초대받았다. 그 자리는 문단의 거장, 박경리 선생을 뵐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이기도 했다.

문학에 대해선 말을 아끼시고, 인터뷰도 극도로 꺼리셨던

분이어서 자연스레 자리의 대화는 문학이 아닌 ‘환경’

이야기로 흘러갔다.

마치 모두가 환경학자가 된 양, 태연하게 기후와 생태에 대한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유독 선생님의 흡연은 이상하리만치 어울렸다.

담배 연기는 창밖의 나뭇가지처럼 자연스러웠고, 그 너머의 박경리라는 이름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어떤 존재는 스스로를 말하지 않아도,

주변의 공기를 바꾸는 법이라는 걸.

아우라란 그런 것이다.


어릴 적 『토지』를 읽을 땐,

선생님을 직접 뵐 날이 올 거라곤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 분을 눈앞에서 본다는 것은, 내가 문학을 ‘쓰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뜻밖의 영광이었다.


나는 요즘 들어 단테가 『신곡』에서 시작한

“우리 인생의 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는 문장을 자주 떠올린다.

그는 35세였다고 한다. 나는 그보다 조금 더 걸었지만,

방황의 감정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그럴 때면 박경리 선생의 시, ‘천성’을 펼쳐본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등불처럼, 나를 다시 데리고 간다.


천성

-박경리


남이 싫어하는 짓을 나는 안 했다

결벽증,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내가 싫은 일도 나는 하지 않았다

못된 오만과 이기심이었을 것이다


나를 반기지 않는 친척이나 친구 집에는

발걸음을 끊었다

자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싫은 일에 대한 병적인 거부는

의지보다 감정이 강하여 어쩔 수 없었다

이 경우 자식들은 예외였다


그와 같은 연고로

사람 관계가 어려웠고 살기가 힘들었다


만약에 내가

천성을 바꾸어

남이 싫어하는 짓도 하고

내가 싫어하는 일도 하고

그랬으면 살기가 좀 편안했을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은 훨씬 더 고달팠을 것이며

지레 지쳐서 명줄이 줄었을 것이다.


이제 내 인생은 거의 다 가고

감정의 탄력도 느슨해져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무덤덤하며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빚진 것도 빚 받은 것도 없어 홀가분하고

외로움에도 이력이 나서 견딜 만하다


그러나 내 삶이

내 탓만은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은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한 가지 변명을 한다면

공개적으로 내지른 싫은 소리 쓴소리,

그거야 글쎄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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