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속이야기2]나는 둘째입니다

아들과 딸, 딸과 아들ㅡ자식사랑법

by 그림책살롱 김은정


어릴 적 저녁 6시만 되면 텔레비전에서 하는 재밌는 만화영화를 보느라 바빴다. 그 중 하나가 ‘독수리 오형제’,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도 독수리 오형제(오빠가 셋, 나와 여동생 한 명)라고 불렀다.


나보다 큰 오빠는 8살, 둘째오빠는 6살, 셋째 오빠는 4살이 많고, 남자와 여자 터울은 4살, 그리고 막내인 여동생은 나 보다 2살 어리다. 남아 선호사상과 남녀차별이 심했던 우리 집에서 오빠들과 나와 4살의 터울은 수치로 보는 4년이 아니라 조선시대와 현대를 가르는 600(?)의 수치적 차이가 있다. 과장된 표현일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남녀차별이 심했다.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었을 때 ‘그건 약과다’라고 생각이 들었으니까.


내 초등 저학년 어릴 적에 우리집 밥상은 ‘큰 상’과 ‘작은 상’으로 나눴는데, 안 방의 중심에 큰 상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빠와 오빠들 셋이었다. 주방과 가까운 곳에 작은 상은 엄마와 나와 여동생이 앉았다. 큰 상에는 반찬 수도 달랐으며 접시에 담긴 반찬도 달랐다. 김, 어묵, 생선은 굽다가 모양이 흐트러진 것들이어서 어릴 적 어깨 너머 큰 상이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다. 일부러 밥을 천천히 먹으면 빨리 먹고 일어난 주인 없는 큰 상에 옮겨 앉아 먹으면 그나마 먹고 싶은 반찬을 먹을 수 있는 정서적 포만감에 배불렀다. 중산층인 우리 집, 70년대는 이랬다.

지금 내 나이가 몇 이냐고? 난, 70년생 김은정. 불과 40년 전의 이야기인데 아주 머나 먼 이야기 같이 들리겠지.


동네에서 소문난 우등생, 모범생인 큰오빠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집안의 청소며 정리, 숙제, 형제들 간의 우애와 다툼 등을 모두 통솔했고, 부모님 아니 엄마의 사랑과 믿음을 독차지 했다. 큰 오빠 덕분에 오빠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형제가 우애가 좋다. 나는 하늘같은 큰오빠와 재밌는 둘째오빠, 다정한 셋째오빠와 싸워본 적은 없는데 두 살 어린 여동생은 내게 매일 매 순간 맞장을 떠서 싸우다 징징 울다가 오빠들한테 엄마한테 혼나면서 일단락되는 울보였다. 엄마한테 매일 들었던 말 중에

“너는 대체 누굴 닮았니? 오빠들 셋은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서로 잘 놀아주는데, 너는 동생 하나 잘 못 보고 매일 울기만 하니?”


사실 지금 봐도 오빠들 셋은 싸울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고 형제가 우애도 좋다. 우리 집에서 매일 싸우고 울며 고자질 하는 건 내 몫이고 난 매일 막내 동생하고 싸우다 지쳐 잠들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공부 잘 하는 것 보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뭔가를 할 때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형제 순위에서는 넷째지만 딸로서는 맏딸이라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오빠들은 무조건 공부해야 했고, 공부에 방해되는 건 가급적 시키지 않았고, 공부와 우애만 좋으면 뭐든 오케이. 오빠들이 책을 산다고 하면 기쁨이었고, 오빠들이 공부 잘하는 건 자랑이었다. 어린 나이인 내가 설거지 잘하고, 방청소 잘하는 건 엄마의 기쁨이었고, 세탁기가 있었음에도 베란다 밖에 있어서 겨울이면 자주 얼어 돌아가지 않을 때 큰 화장실에서 손으로 직접 빨래를 하면 엄마의 가장 큰 기쁨이었고 명절 때 김을 잘 구워서 칭찬 받는 것이 나였다. 처음 설거지는 7살 때, 처음 밥을 해 본 기억은 9살 때였다. 엄마는 ‘밥과 설거지를 시키지 않아도 잘 하는 아이’일 때 칭찬을 해주셨다. 그래서 그럴까? 중고등학교 때 시험기간 일주일 전부터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공부하기가 왜 그리 싫은지, 띵가띵가 놀다가 시험을 치르면 당연히 오빠들 기준보다 낮은 나는 혼나는 대상이었다. 혼나긴 싫고 대신 칭찬을 받는 방법은 시험 보기 하루 이틀 전부터 바짝 방청소로 방을 반짝 반짝 빛나게 했고, 이불 빨래까지 발로 밟아가며 거품을 뿜어내며 옥상에 널었다. 설거지할 때 주방의 씽크대 까지 엄마의 손길이 따로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깔끔하게 청소 끝~ 칭찬 시작~


아빠는 엄마처럼 오빠들과 나와 여동생을 차별하지 않았다. 아빠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았다고 기억하는 것 중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주 어릴 적 큰 집에 제사를 지내러 갔을 때 다들 절하는 걸 보고 나도 절하려 했다가 혼난 적이 있었다. 남자만 절해야 한다고 예쁘게 치마 한 복을 입혀놓고서는 맨 뒤로 오라고 당겨내곤 했었다. 큰 집에서 막내인 아빠는

“여자라고 왜 절을 못하냐? 은정이 이리 와서 할아버지할머니께 절 하자.”

며 손을 잡아 주셨고 우리 친척집에서 처음으로 여자인 내가 절을 했다. 그 뒤부터 주방에 계시던 큰 엄마, 형제분들과 우리 엄마까지 마지막에 절을 할 수 있었다.

또 한 가지는 오빠들은 이발소에서 스포츠 머리를 해주었지만 나는 엄마가 가위로 집에서 싹둑 잘라주셨다. 앞머리는 무조건 눈썹 바로 위에서 일자로 싹둑, 뒷머리와 옆머리는 귀와 어깨 사이에서 일자로 싹둑. 예쁘게 나만의 개성을 살려서 머리를 잘라주신 게 아니라 엄마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여자인 내 머리는 정말 6.25 피난 머리스타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머리 기르고 싶다고 해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여전히 내 머리 스타일은 피난 단발머리였다. 초등1학년 가을 무렵인가? 이날도 엄마는 커다란 보자기를 목에 둘러 머리를 자르려 했다. 그 때 아빠가 옆에 계시다가

“은정이는 머릿결이 고와서 긴 머리카락을 하면 잘 어울릴텐데?”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이제 보자기에 싸이지 않아도 되었고, 피난 단발머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앞머리도 뒷머리와 같이 길러서 등 가운데 까지 길렀다.


사업하는 아빠와 직원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이 바빴던 엄마였기에 나는 엄마에게 귀찮게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어릴 적부터 독립적이었다. 혼자 책가방도 챙기고, 뭐든 혼자 잘 알아서 처리해야 했던 때라 단 한 번도 엄마가 챙겨준 옷을 입어본 적도 없고, 머리도 내 손으로 묶고 다녔던 손 하나 가지 않는 울보 큰 딸이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워낙 학생들은 많고 교실은 한정적이어서 초등 3학년 때까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등교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지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밖에서 친구들이랑 뛰어 놀다가 학교 가는 걸 깜빡하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난 학교에 늦는 건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며 무서웠고, 지각하면 천벌을 받는 줄 알았던 터라 때였다. 초드악교 2학년 때 엄마가 처음으로 머리를 묶어주셨던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신나게 뛰어 놀다 보니 머리에 흐른 땀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라가은 빗질도 되지 않은데다 마음이 급해서 머리가 잘 묶이지 않았다. 엄마는 힘들게 빗질하는 나를 엄마 품으로 끌어당기더니 천천히 빗질을 해주셨다. 흐트러진 머리를 촘촘한 빗으로 조심조심 빗질을 하고 찰랑찰랑 쭉쭉 차분이 내려 앉게 빗질을 해주신 엄마는 빨강색 두 개의 왕방울이 있는 방울을 들고 여러 번 묶으려 했으나 방울이 튕겨져 나가고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머리는 묶이지 않았다. 그 때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은정아, 엄마가 한 번도 머리를 묶어준 적이 없어서 엄마가 머리를 묶어줄 수가 없구나. 어쩌니?”

난 잽싸게 한 번에 머리를 묶었다. 엄마는 내게 미안해 하셨지만, 나는 엄마냄새를 가까이서, 독차지 할 수 있어서 무지무지 행복하고 좋았다. 학교가 언덕에 있었지만 단숨에 뛰어갔고 늦지 않았다. 그 날 엄마는 정오의 햇볕이 가득한 노란 해바라기 같았고, 엄마는 달고나 같이 달달하고 맛나고 좋았다.


아빠가 매일 하시는 말은

“누가 아빠 양말 벗길래?”

그러면 나와 여동생은 쏜살같이 달려와 아빠의 양말을 벗겼다. 뽀글뽀글 동그랗게 말려 자란 아빠 다리의 털이 신기해서 털을 펴주기 놀이하고 놀았다. 아빠는 요를 펴고 한 가운데 누우시면 오른 팔에는 항상 엄마를 팔 배게, 왼팔은 딸 둘을 위해 팔 배게를 해주셨다. 아빠가 눕기가 무섭게 아빠 바로 곁에 누우려 나와 동생은 서로 잡아당기며 밀치기를 했다. 그러면 아빠는 둘이 가위바위보를 하고 이긴 사람이 선택하라고 하셨다. 여동생과 나는 서로 이기거나 질 때 서로 징징대거나 기쁨의 환호성을 치며 놀다 잠들었다.

오늘 갑자기 어릴 적 추억들을 소환하게 된 그림책은 정윤정 글, 그림 <나는 둘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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