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사회생활과 결혼을 하면서 많이 바뀌는 게 있는데 그 중 ‘사회적 성격’과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한다. 기본 성격은 그대로, 모양은 조금 변형된 성격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부딪혀서 깎이고 더 강해지거나 약해지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고 하고 받기도 한다. 더 이상은 당하고 싶지 않아 의지를 불태우기도 하고 때론 실망하여 털어내기도 한다. 이러면서 다친 마음을 돌보기 위해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관계가 관계를 조금 띄어진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지도 모른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적 거리를 둔다는 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니 셈이다.
어릴 적 나는 친구들을 좋아했다. 왈가닥이고 활달해서 남자여자 가리지 않고 골목대장처럼 놀았다. 놀다 싸우다가 울고 들어와서는 다음 날 싹 잊고 다시 예전처럼 놀면서 주변에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았고, 가리지 않고 지내는 게 세상 제일 편했던 때였다. 놀지 말아야할 친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지내야 할 친구가 정해진 것도 아니었기에 편하게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나의 몸에 스며들듯 그렇게 지내왔다.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심리상담과 강의를 하지만 예전과 달리 사람들로 인한 힘듦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럴수록 만나는 사람들이 다양하고 많아져 더욱 상처받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지도 모른다. 첫인상이 좋고, 뭔가 통하는 것 같은 사람에겐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잇속을 모르고 당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떤 교육장이나 스터디를 통해 알 게 된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요청하면 있는 거 다 알려주고 마음도 퍼나르다 보니 마음 상함과 배신감, 업무적 손해까지 본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을 가까이서 보아온 가장 친한 친구는 “처음부터 색안경을 쓰고 좀 봐. 처음부터 느낌이 좋다고 다 퍼주지 말고, 적당히 거리 두고 지켜보면서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아.”라고 한다. 적당한 거리를 두라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심경을 써서 힘들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적당하게’ 잘 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까지가 정당한 건지도 잘 모르지만 하다보면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고 행동하게 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잘 안 된다면, 사람을 대할 때 식물을 대하듯 하면 어떨까? 각각의 특성을 알고 그에 맞게 대한다면 잘 성장한다면, 사람들에게도 식물의 성장배경을 알고 다가간다면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다치지 않고 상하지 않게 거리를 두면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내 마음을 간접적으로 잘 표현한 전소영이 그리고 쓴 『적당한 거리』 그림책이 있다.
그렇게 모두 다름을 알아가고 그에 맞는 손길을 주는 것. 그렇듯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사랑의 시작일지도.
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야. 안다는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기도 해. 한 발자국 물러서 보면
돌봐야 할 때와 내버려 둬야 할 때를 조금은 알게 될 거야.
적당한 거리란,
내가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멋스럽게 행사하는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멀고 멀리 하기엔 가까운 거리’라고 하면 너무 모호할지도 모른다. 가깝다는 이유, 친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너무 가까이 끌어당겨서 자기 식으로 가지치고, 거름을 준다며 뿌리가 썩게 하기도 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방이 생각한 마음으로 내 마음을 재단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적당한 거리에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내가 상처받지 않을 거리와 내가 상처를 주지 않을 거리를 잘 조율하는 것도 포함된다. 내가 아무리 주려고 해도 상대방이 받고자 하지 않는다면 권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선의로 준다고 해도 지금 당장 받고 싶지 않거나 받을 상황이 아닐 수도 있기에 자기방식으로 타인의 방식이 틀리다는 이유로 비난하거나 뒷담화를 하지 않아야 한다. 설령 그것이 그 사람을 위하여 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반대인 경우도 있는데, 상대방을 위해 하는 배려를 더 요구하거나 그 배려가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뭔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고 주는 것은 아까워서 자기 것을 덜어내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경우 타인의 것은 자기 것이 되는 건 당연하고, 자기 것이 타인의 것으로 향할 때는 속이 좁아 미간도 찡그린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도 가까운 거리라 생각하는 경우에 도가 지나칠 때가 더 많다. 오히려 가까운 거리의 사람인지라 앞 뒤 재지 않고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이해하려는 마음에 지치게 되면 적당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아쉬움을 표현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해 준 것과 덕본 것을 운운하며 오히려 상대방이 먼저 더 거리를 두기도 한다.
적당한 거리는 사람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책보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좋아하고 잘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양쪽 모두 싫어하고 다른 영역인 여행이나 운동을 좋아할 수도 있다. 거리두기란, 식물을 대하는 것과도 같다. 햇볕을 많이 죄어야 하는 식물을 그늘에 둔다거나,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어야 하는 식물에게 오고갈 때마다 물을 준다면 그 식물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뿌리가 물러지거나 잎이 떨어져 오래 가지 못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침해하지 않으며 침범하지 않는 거리가 중요하다. 상대방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마음을 다독이며 위해주는 거리가 적당한 거리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닌 어설픈 동정으로 상대방을 위한다는 포장을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가 베푼 배려와 희생에 응답하지 않아 실망시켰다고 무 자르듯이 단 칼에 베어버리는 거리두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험한 거리두기다.
적당한 거리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마음을 써주는 것을 말한다. 뭐든 적당한 건 어렵지만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람일수록 적당한 거리는 필요하다. 그래야 좋은 사람을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다. 적당한 거리는 내가 덜 주어도 덜 미안하고, 더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