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시기에 각별하게 다가오는 '시절 인연'처럼, 힘들 때 유난히 마음을 울리는 '시절 음악'이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이 달라지듯 귀에 꽂혀 듣던 음악도 달라진다. 또 어느 순간에는 '시절 그림책'이 나를 위로해 주기도 한다.
딸아이의 돌 무렵 별거를 하던 시기에 내 마음을 후벼 파던 시절 음악은 조성모의 '가시나무'였다. 남편에게 바랐던 건 4대가 같이 사는 주부로서의, 또 며느리이자 아내로서의 마음을 이해받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소망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는 점점 외로워졌다.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했던 별거, 결국에는 이혼으로 이어진 그 과정에서 듣던 '가시나무'는 마치 나를 위해 쓰인 것만 같았다. '내 안에 가시가 많아서' 어려움을 자초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꼭 나의 이야기였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이 쉴 곳 없네.’
시댁과의 갈등에서 가시는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가시나무>의 가사는 분가(分家)를 외치며 가시를 세우는 나의 욕심, 그리고 4대 독자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면서도 고집을 피우는 마음을 잘 드러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나는 4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의 외며느리 역할을 수행할 만큼 큰 그릇이 못되었다. 나의 부족함과 결핍된 자아는 점점 많은 가시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 상대방을 안는 것조차 위태로워졌다.
처음에는 노래 가사로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 좋았는데, 반복해서 들을수록 나의 문제가 더욱 크게 들렸다. 별거와 이혼으로 가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죄 없는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우울로 이어졌고, 나는 아침에 눈뜨지 않기를 바라는 은밀한 소망을 품은 채 몇 년을 버텨야 했다.
'대통령과 장손의 며느리는 하늘이 점지해 준다'라는 말이 있다. 섣부른 결혼으로 주어진 장손의 외며느리 역할은 저 말의 무게만큼 힘겨웠다. 스스로 4대를 품을 그릇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더 괴로웠다. 가족이 반대하는 결혼이었기에,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것처럼 잘 사는 모습만을 보여줘야 했다. 그렇게 해야 온전히 나를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 고립되어 갔다.
별거하면서, 또 이혼 후 몇 년 동안은 그렇게 '가시나무' 가사처럼 살았다. 아픈 마음으로 누군가를 안으려 하면 더 아팠고, 내가 나를 안아주려 양손을 양쪽 어깨너머로 쭉 펼칠 때면 더 쓰라렸다. '내 안에 가시가 너무도 많아' 나조차 편하게 쉬지 못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아이가 3살쯤 되었을까? 그때부터 나의 시절 음악은 만화영화 '캔디'의 주제곡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울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반대한 결혼을 선택한 것도 나. 힘들게 이혼 절차를 밟은 것도 나. 모두 나의 책임이었고, 이혼했다는 말도, 이혼 후 삶이 힘들다는 말도 섣불리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는 순간 나 자신이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다. 먼지처럼 날려 없어지지 않으려면 발버둥 치며 멀쩡히 살아있음을 신고해야 했다.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기에 이혼한 여자가 되어서도, 이혼한 티를 내서도 안됐다.
그런 시대였다. 20년 전, 이혼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과 달랐다. 부정적인 눈길에 함몰되는 게 싫어 이혼한 티를 내지 않는 것은 물론,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 않고 웃으며 버텨냈다. 내가 울면 딸아이가 따라 울까 겁났고, 다른 사람들이 애처롭게 보는 것도 싫었다. 아프면 혼자 아프면 된다. 병원에도 혼자 가면 된다. 내색하는 것은 사치다. 캔디 노래를 소리 내어 부르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위로하며 살았다. 혼자 안티푸라민을 바르던 날, 혼자 등에 파스를 붙이던 날 내가 부른 노래는 힘들어도 절대 울어서는 안 된다는, 버티어 이겨내리라는 의지가 담긴 노래였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앞길도 보이지 않아. 나는 아주 작은 애벌레.'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독서치료를 전공하기 위해 평택대학원에 다닐 무렵 나의 시절 음악은 윤도현의 <나는 나비>로 바뀌었다. 아이도 어렸지만 내가 나아갈 길도 구만 리 같았다. 앞에 놓인 길은 멀고 험했고, 버텨내야 할 게 여전히 많았다. 인고의 시간을 온전히 거치고 나면 나비가 되어 비상하기를 소망하는 가사가 내 마음에 와닿은 것도 그 때문이다. 신나고 흥겨워 어깨가 들썩이는 멜로디도 전과 달리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픔을 이겨내고 찬란한 나비가 되기를 고대하는 <나는 나비> 가사는 미래를 꿈꾸게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히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살이 터져 허물을 벗을 때까지, 아직은 별 볼일 없는 애벌레임을 인정해야 했다. 자기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이혼녀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상담할 것이냐는 아이러니한 질문을 받고 위축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한층 더 위장된 삶을 살도록 스스로에게 강요했다. 없어도 있는 척했다. 남편이 있는 것처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것처럼. 상담과 관련한 모든 일에 통달한 척척박사인 것처럼. 아닌 척, 있는 척, 좋은 척, 아프지 않은 척, 충분한 척, 척, 척, 척. 위장을 위해 몇 겹의 철갑 옷을 두르고 살자니 어깨가 무거웠다.
지금은 특별히 자주 듣는 노래가 없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이 더 잘 표현되어 있는 그림책, 나를 위로해 주는 그림책을 보는 게 더 흥미로워졌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나의 내면을 보여주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내 모습이 고스란히 잘 나타난 그림책이 있으니, 최덕규 작가가 쓰고 그린 《거북아, 뭐 하니?》다.
친구를 만나러 외출한 거북이가 뒤집혔다. 다시 뒤집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데, 참새가 나타나 뭐 하냐고 묻는다. 거북이는 수영 연습 중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솔직하게 도와달라고, 뒤집어졌으니 누구라도 불러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참새가 떠난 후 토끼, 돼지, 원숭이, 악어까지 나타났지만 거북이는 그들을 무시하면서 자극하는 말을 내뱉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은 작고 미약해 못 미더워 보였던 두더지의 도움으로 그 위기를 모면한다.
인생은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누구의 도움만을 기다리며 사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정말 타인의 손길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요청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물렁한 자신이 터져버릴까 딱딱한 껍질로 무장한 채 강한 척 하는 대신 '진짜 나'를 드러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몇 년 전부터는 예전과 달라진 나를 본다. 간지럽고 엄살처럼 느껴져 하지 못했던 말들을 종종 한다. 이럴 때 이렇게 힘들다고, 저렇게 하면 아프다고 말한다. 단단한 '척' 하지 않고, 정말 나다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모르는 것 같아도, 사람들은 다 안다. 힘들게 갑옷을 겹쳐 입고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를 위한 배려로 모른 체할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면의 여유 공간을 두고 살아야 한다. 솔직함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나를 궁지로 몰지는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이만큼 물렁하고 저만큼 부족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어디까지 도움이 필요하고 언제까지 곁에 있어 달라고 진심 어린 요청을 하면 어디선가 나만의 두더지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스로를 남의 시선에 휘둘리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남을 의식하다 보면 핑계가 늘고 탓을 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여유 공간에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아야 한다. 나는 상처 많은 애벌레고 번데기지만 결국엔 나비니까. 노랑나비일지, 흰 나비인지는 두고 봐야 아니까.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에 한 조각 파이 같은 달달한 여유를 더해보자. 오늘은 핑계 없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