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어릴 적, 먹고살기 바빠 많은 걸 해주지 못했다. 다만 재미있다며 계속 들고 온 책들만은 다 읽어주려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읽어준 그림책 개수를 세어보니 마흔다섯 권일 때도 있었다. 물론 그림책을 읽어주다 내가 먼저 잠든 적도, 바쁘다는 핑계로 짜증을 낼 때도 많았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아버지의 부재를 완전하게 채워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적당한 방임이 아이를 더 건강하게 키운다'라는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일과 육아, 공부를 병행하며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이런 엄마에게 최적화된 아이인 듯, 딸은 아기 때부터 먹고 자는 시간이 규칙적이라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 허용 폭이 넓은 울타리를 제공하면 그 안에서 스스로 잘 놀고, 자기를 챙기면서도 또래들과 잘 지냈다. 혼자서 해내는 독립성과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내미는 관계성을 고루 갖춘,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소신 있는 아이로 자라주었다. 정말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다.
부족한 엄마지만, 해 줄 수 있는 건 해 주려고 노력했다. 힘들어할 때는 토닥이며 용기를 주고, 지쳐 울고 싶을 때는 충분히 울 수 있게 가슴으로 안아주며,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그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공부 잘 하던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았다. '기말고사 때 보여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1학년 학생이 수능을 앞둔 수험생처럼 공부했지만 성적은 의지대로 나오지 않았다.
“학교 중퇴하고 싶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지겠다.”
10년 넘도록 상담을 이어온 상담자로서 한순간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평소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하는 말을 내 아이 입에서 듣다니 믿을 수 없었다. ‘검정고시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검정고시 준비하다 보면 교복 입은 친구들이 그리울 거다,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가져야 하는 거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해 보자.’며 회유책을 썼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며 한발 물러섰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딸은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선생님에게 전화해도 별 일이 없었다고 하시니, 사고친 건 아닌가보다 싶어 일단 다행스러웠다. 안심한 나는 자퇴하고 싶은 이유를 물었다. 딸은 다른 애들은 모두 과외를 받으며 2년 선행학습이 되어있고, 그러면서도 시험 때는 여러 차례 복습을 하기 때문에 자신은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했다.
아이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무조건 박사학위를 받겠다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린 스스로가 한심했다. 딸아이가 중학교 과정을 마칠 때 엄마인 나의 공부도 마치고,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그때부터 투자하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찌나 미운지, 화가 나서 울고 말았다. 학교에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힘들어했을 아이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그저 스스로가 먼저였던 나의 이기심에 화가 치밀었다.
아이 앞에서는 태연한 척하기에 급급했지만 감정을 추스르는 데 참 많은 에너지를 썼다. 스스로를 원망하고 뒤늦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어봐도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지금,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옳을지를 일주일 동안 생각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치열한 고민을 거친 끝에 일주일 뒤에 다시 만나 물었다. 학교에서 가장 힘든 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딸아이는 되지 않는 공부를 하는 게 가장 큰 곤욕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대학에 갈 자신도 없고, 대학 간다고 취업이 보장되지도 않데 불확실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럼 성적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최대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렴. 대신 평생에 한 번 있을 수능은 꼭 보는 걸로. 필요하면 방송통신대나 사이버대학을 다닐 수 있으니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렴.”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성적표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도 본 적이 없다. 아이는 학교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친구들에게 또래상담을 하면서 즐겁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딸아이가
엄마, 내가 학교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 친구들이 엄마 같은 엄마를 둔 내가 부럽다고 했어. 그동안 믿어주고 밀어줘서 감사합니다.
라며 안아주어 너무 행복했다.
딸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이과에서 취업반으로 옮기면서 간호조무사로 진로를 전격 이동할 때도, 나는 실습 때 다리가 붓지 않도록 항공 압박 스타킹을 사주며 응원했다. 이론 출석을 마치고 4개월의 병원 실습 후 자격 검정고시만 치르면 정식으로 병원에서 일할 수 있지만, 코로나로 시험은 무한 연기되었다. 혹 다른 분야의 직장에 취업하더라도 시험 날짜가 정해지면 시험을 치르겠단다.
약속한 수학능력평가도 치러가며 속 편한 고3 시절을 보낸 딸은 '대학에 큰 미련은 없지만, 엄마처럼 상담하는 일을 하고 싶다'라며 사이버대학교에 상담심리 전공으로 진학했다. 온라인으로 중간고사도 보고, 과제 제출도 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하고, 결정한 일들을 잘 이행하는 면이 참 멋지다.
딸은 옷을 사서 모으는 게 취미다, 오늘 아이가 출근하고 없는 방에서 옷장과 행거에 걸린, 그 애가 좋아하는 옷들을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열린 아이 방을 볼 때 마다, 사랑스러운 딸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나는 그림책이 있다. 명수정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세상 끝까지 펼쳐지는 치마>. 우리나라의 한복이 연상되는 그림책이라 더 가슴에 와닿는다.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색감도, 활짝 펼쳐진 치마의 한 폭 한 폭에 아이의 꿈을 심은 그림도 좋다.
반복되는 운율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간절한 소망이 딸의 마음처럼, 또 나의 마음처럼 전달되어, 요즘 들어 이 그림책을 가슴에 품고 딸을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 치마 세상 끝까지 펼쳐져?"
"그럼!"
싸지만 결코 싸 보이지 않는 옷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골라 모으는 게 취미였던 딸은 요즘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어떤 옷을 입고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릴지 궁리하며 다음 날을 준비한다. 쇼핑한 옷이 도착하면 기존에 가진 옷들과 어떻게 매치하면 좋을지, 작은 거실에서 패션쇼를 하며 내게 묻고, 답하고, 입고, 만족하면 다시 옷걸이에 가지런히 정리한다. 자신의 옷장을 채우며 꿈을 키운 아이는 이제 온라인 쇼핑몰 피팅 모델로 활동 중이다. 인스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팔로워 1만 명을 찍었다며 좋아하는 딸. 협찬받은 물품에 최선을 다하며 전문가 다운 면모를 보이는 딸.
처음 쓰는 이력서에 자기를 있는 그대로, 창의적으로 표현한 덕분에 1차 서류심사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던 딸의 예쁜 모습이 눈에 선하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신체구조와 참신한 감각이 피팅 모델로 적합하다'라는 말을 들으며 면접에도 당당히 합격했다. 대견하게도 지난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것이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수함과 자기 일을 사랑하는 열정을 고루 갖춘 딸. 좋아하는 일에서 독창성을 표현할 줄 아는 너에게는 이제 사회 초년생이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징검다리가 나타나겠지. 엄마가 대신해줄 수 없는 것들이 많겠지만, 언제든 손 뻗으면 잡아 줄 그런 날도 있을 것이다. 세상으로 한 발, 또 한 발을 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