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
‘아무도 모르는 숲에 들어가 살아 봤으면’,
‘일 년 동안, 아니 한 달만이라도 세상과 담쌓고 조용히 살 수 있다면’,
‘지금의 이 복잡한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것이다. 현재 상황이 힘들어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이런 생각들을 한다. 코로나로 힘들어 하는 요즘 멈춰버린 시계처럼 느껴지는 게 싫어서 바이러스가 없고, 누군가의 침해를 받지 않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할 때 더욱 더 생각이 난다.
나에게 있어 큰 화두가 되는 말 중에 하나가 ‘혼자 여행’이다. 그래서 그럴까? 자연을 벗 삼아 2년 2개월의 월든 호수에서의 삶을 담은 온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올 해 7월에 같은 제목으로 ⌜월든⌟그림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그림책에서는 월든에서의 생활을 1년으로 표현되었다는 것과 각 페이지 마다 주인공의 마음과 상황을 수채화로 그림에 담았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나 쉬고 싶을 때 언제든 어디서든 짧은 시간에도 펼쳐 보며 위로를 받을 수 있게 그림책으로 출판되어 무척이나 반갑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나의 소원은 두 개였다. 하나는 ‘이사’였고, 다른 하나는 ‘혼자 여행’이었다. ‘이사’ 소원은 타의 반, 자의 반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혼자 여행’은 내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이룰 수 있는 소원이지만 시도해 보지 않아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소원이다. 가볍게 들리겠지만, ‘혼자 여행을 가면 어딘가에 끌려가 원래 생활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라는 비합리적 신념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나이에 말도 안 된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말을 믿기 어렵다는 시선으로 쳐다볼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다.
24살 때 그 당시 애인이었던 전남편과 강원도 여행을 갈 때였다. 휴가철이라 차 막히는 때를 피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출발을 했다. 초반엔 남편이 운전을 했는데 강원도 초입에 들어서서 남편이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전 여행을 위하여 내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면허를 취득한지 3개월 정도 밖에 안 된데다 새벽 야간 운전이라 많이 긴장하며 운전을 했다. 진부령을 넘을 무렵 갑자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고갯길에 우리 차 말고는 그 어떤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길옆으로 지나가는 나무들이 귀신처럼 보였고, 보슬비가 시야를 가려 눈앞이 침침해졌다. 보조석에서 자는 남편을 깨웠으나 쉬 깨어나지 않아 상향등을 켜가며 초집중해서 운전을 했다. 그런데 분명 아까 지나갔던 이정표가 다시 나타났다. 다시 지나 갔는데도 또 그 이정표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두 어 시간이나 운전을 해서 왔는데도 그 자리였고, 다시 정신차리고 운전을 해서 보면 그 이정표가 또 보이는 것이었다. 잠깐 차를 세우고 싶었지만 차를 세우는 순간 귀신이 보일 것 같았고, 잘못하면 북한으로 끌려갈 것 같은(이건 귀신 무서워하는 것 보다 더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 당시 그 시점에 북한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날 끔찍하게 만들었다) 공포감이 들어서 손과 발이 후들후들 떨렸다. 간신히 큰 소리를 내며 남편을 심하게 흔들어 깨웠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당시 그 때가 생각나서 소름이 돋는다. 이 순간 카톡이 오는 알람소리에도 깜짝 놀랐다면 말 다했다.
이 때 놀란 이후로 여행에 대한 트라우마 생겼는데, 강원도 가는 진부령, 미시령 등 고개를 갈 때 새벽운전하지 않고, 혼자서는 절대로 어딜 가지 못한다. 지방 강연을 갈 때 가급적이면 새벽운전해서 늦게 귀가하더라도 당일치기로 갔다 온다. 숙박을 해야 한다면 강연장소와 아주 가까운 곳, 또는 근처 지인이나 친척집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움직이는 것으로 스케줄을 잡는다. 확실한 목적지가 정해지면 그 곳에서 강연이나 봐야 할 업무를 보는 것만 한다. 가는 길에 어디 맛집을 가고, 명소를 들렸다가 여행 삼아 다녀오라는 말을 하지만 난 그냥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는 것이 날 참 슬프게 한다.
누구는 내게 쉽게 이야기 한다. ‘그까짓 것! 여행 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드냐’, ‘여행은 누구나 언제든 배낭 하나 매고 가면 가는 거다’, ‘여행에 큰 돈 들일 필요 없이 교통카드 한 장이면 다녀올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하게 생겼는데 왜 여행을 혼자 못 가느냐’, ‘혼자 여행 간다고 해서 누가 당신을 업어가기라도 할 것 같으냐’ 등등으로 날 회유하며 여행을 가보라고 강하게 추천하는데 난 그 간단한 여행도 가질 못한다. 혼자 여행은 나에겐 공포 그 자체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이야기해도 내 말은 그냥 엄살로만 여긴다.
지금도 혼자 여행하고 싶고, 월든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한 달간 남모르는 곳,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지내다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가질 못한다. 24살에 겪은 여행 트라우마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여러 번 시도를 한다고 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중간에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귀가를 서두르거나 일정을 변경한다. 아쉽고 안타깝게도 혼자 여행을 가지 못한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떨려서 지금도 가슴이 쿵쾅 거려 가슴에 잠깐 손을 올려놓아야 한다.
“그 집은 가장 가까운 이웃과도 1.6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올 해가 가기 전에 나 스스로에게 주는 미션이 있다.
올 해 꼭 한 번이라도 해야 한다. 월든처럼 갈 수 있으려면 난 몇 년, 몇 번의 혼자 여행 시도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한 묘책이 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것을 하되 부담되지 않는 범위에서 하루 몇 시간 코스로 버스 투어나 지하철 투어로 카폐 방문하는 것이다. 특별한 일정 없을 때, 그림책 한 권과 무지노트, 교통카드, 휴대폰만을 넣은 가방을 들고 나선다. 목적지를 정해 두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무작정 내리는 거다. 내려서 가장 예쁘거나 인상적인 카페에 들어가서 내가 좋아하는 카폐라떼를 주문한다. 편안하게 그림책을 몇 번씩 읽다가 카페에서 풍경을 즐기며 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월든처럼은 못하지만, 혼자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어디서든 1박도 할 수 있는 자신감과 어디를갈 수 있다는 무대포적인 자신감으로 나의 불안과 공포를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 본다. 상상만으로도 절반은 치유된 듯 착각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즐겁고 좋은 추억을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다. 누구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이 될 수 도 있고, 누구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에 모험이 될 수도 이지만, 누구에게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당연지사 타인도 그렇게 경험할 것이라고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경험치가 다르듯이 경함한 장소와 경험 한 때가 다를 수 있음과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권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발적인 것과 자의에 의한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월든 그림책은 나에게 도전과 모험을 즐겨볼 기회를 준 셈이다. 이 나에게 주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보다는 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라는 메시지로 다가와서 무척이나 인상 깊은 그림책이다. 또 월든 그림책은 그간 잊고 지냈던 ‘혼자 여행’을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